팀 오브라이언(Tim O’Brien)은 수많은 전쟁이야기를 써왔다. 그중 대표작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The Things They Carried)은 뉴욕 타임스가 꼽은 ‘20세기의 책’ 가운데 하나며, 아마존 ‘평생의 필독서 100선’에도 포함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징집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짊어지는 물건과 그에 얽힌 감정의 무게를 다룬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필수품과 준필수품, 직책에 따라 배정된 장비 외에도 자신만의 특별한 물건을 소지한다. 이미 헤어진 여자 친구의 사진, 부적으로 간직하는 여자 스타킹, 신약성경, 가까이 지내던 여자 대학생의 편지 등, 각자에게 의미 있는 물건은 모두 달랐다.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단순한 소지를 넘어 짊어진다는 의미였다. 병사들은 그렇게 육체적, 정신적 무게를 안고 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짐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허망하게 마주하는 죽음, 전우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 이 모든 감정이 짐처럼 그들을 짓눌렀다.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더 두려운 젊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비탄, 공포, 사랑, 갈망, 체면에 대한 두려움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전역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기억은 과거가 아닌 현재로 되살아나며, 작가는 자신의 경험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갑작스레 징집된 그는 전쟁도 두렵고 도피도 두려운, 그런 마음으로 입대하게 된다. 이후 다양한 배경과 성격의 병사들과 함께 싸우며, 갈등을 겪고 그들만의 독특한 연대를 만들어 간다. 전우의 죽음을 마주한 병사들의 애도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며, 기억의 소용돌이로부터 무너지지 않도록 버텼다. 전쟁은 끔찍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폭격이 끝났을 때 살아있다는 감각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는 두 차례 부상으로 후방에 머물게 되었는데, 잠시 교대로 본부에 들어온 옛 부대원들과는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지겹기만 했던 정글 생활에서 벗어났지만 정글에서 함께 뒹굴던 동료에게는 미안함과 소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한편, 자신의 부상에 제때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부대원에 대한 분노는 끝내 버릴 수 없었다.
전역 후 고향에 돌아온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려 하지만, 전쟁의 후유증은 남아있다. 행군 중 강물이 범람하던 날, 진창에 휩쓸려 죽은 전우를 떠올리며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고 지금 무엇이 괴로운지 말하고 싶어도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던 한 전우는 이해받을 수 없다는 확신으로 깊은 고립감에 빠졌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화자는 약한 베트남 남자를 죽인 적이 있다. 죽이려던 의도라기보다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 기억은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니지만, 어린 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20년 후, 그는 다시 그 전쟁터였던 들판을 찾는다. 전우가 폭우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던 그곳은 이제 너무나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린다. 그 들판의 평온한 풍경은 전쟁과 상처마저도 시간 속에 녹아드는 듯하다.
이 작품은 전쟁 이야기이자, 진실과 사실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나는 그것이 단지 군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삶 또한 짐을 지고 끝없이 행군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통의 짐뿐 아니라 각자만의 짐을 지고 산다. 떨칠 수 없는 두려움, 전쟁 같은 사회 속의 긴장, 체면 때문에 진심을 감추는 순간, 자존심 때문에 용서를 미루는 시간들, 도와주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이런 감정들은 우리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 홀로 감당하는 순간도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몫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간 뒤, 들판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해 보이듯, 인생의 고통과 상처도 그렇게 잦아드는 것일까. 전쟁 이야기 속에서 나는 오히려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묘한 평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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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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