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북 30년만에 탈출한 이재근씨 폭로
▶ 워싱턴서 피랍자 인권문제 제기
북한 인권 주간을 맞아 워싱턴 일원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피랍자들에 대한 관심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 70년 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다 중국 산동 반도 인근에서 납북돼 30년 후인 2000년 겨우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이재근(67·경찰청 숭의회 부회장)씨.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와 워싱턴을 찾은 이씨는 28일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시위에 참가해 목청을 높였다.
이씨는 98년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했다가 “당신이 한국 정부에 세금 낸 거 있느냐.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핀잔을 들었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던 사람이다.
이번 방문 중에는 연방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등 미 정부 및 한인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또 하나의 인권탄압 사각지대인 피랍자 실상을 고발하고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계획이다.
북한에 있는 동안 중앙당 정치학교에서 3년간 간첩 교육을 받았던 이씨는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혁명 사상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끝내 남파되지 못했다.
특수요원으로 훈련받은 몸이다 보니 감시가 심해 탈출은 꿈도 못 꿨다. 그러다 식량 대란으로 보안이 느슨해진 틈을 타 98년 흑룡강성 상지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처가가 있는 이곳에 아내와 아들이 그보다 먼저 와 있었다.
이씨의 탈북은 피랍자들의 현황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의 증언으로 2001년 진정팔씨, 2002년 김병도씨 등이 풀려날 수 있었다.
납북 사건은 60년대부터 점점 많아지더니 70년대 말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이씨는 “북한에 아직 억류돼 있는 피랍자 숫자가 공식 발표는 486명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600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 대표는 “2000년에 납북돼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김동식 목사 등 북한의 테러 행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거들었다.
김 목사는 실종 직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바 있어 의료시설이 형편 없는 북한에 계속 있었다면 상처 관리가 힘들어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피랍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좌제는 다행히 87년 폐지됐지만 생환된 납북자를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전혀 없어 생계 조차 쉽지 않다.
도 대표는 “간첩의 가족이라고 보는 주변 사람의 의심스런 눈총과 사회생활 제약으로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잊혀진 그늘 속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피랍자들의 인권 문제를 상기시키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씨와 도 대표는 29일 페어팩스 한인교회에서 열리는 피랍자 대책 세미나에도 참석한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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