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생과 7학년에 다니는 딸을 가진 독자로 평범한 주부다. 5월 27일자 오피니언을 읽고 마음이 씁쓸하여 몇 자 적는다. ‘대화는 사랑의 열쇠`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참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었다. 과학기술원 시험에 낙방하고 아파트에서 투신한 한 젊은이를 예를 들어 쓴 글이었다.
그 젊은이(학생)에 대해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참석한 사람 중에 따님이 그 죽은 학생과 절친한 사이이고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내서 부모끼리도 잘 알고 지낸다 했다. 그 성실하고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참하던 아이가 자살을 했다며 외아들인 그 아이를 갑작스럽게 잃고 그 어머니는 충격 속에 몇 번이나 혼절하고 깨어났다가 또 쓰러지고 했다는 것이다.
얘기 들려주던 그 분 딸만해도 며칠 전까지 죽은 그 아이와 통화하던 터라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매일 울고 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밝고 명랑하던 친구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죽은 아들과 그 어머니가 늘 친구처럼 대화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지내는지 친구들도 많이 부러워 할 정도였으니 그 어머니의 상실감과 서글픔이 얼마나 크겠냐고도 했다. 그 곳에 모였던 많은 엄마들이 자식 가진 부모로서 한마음이 되어 마치 먼저간 아들이 내 아이이고 보낸 엄마의 심정이 내가 된 듯 그 어머니가 어떻게 살겠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떻게 오피니언 필자는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 학생을 예로 들어 마치 그 어머니가 대화를 통하여 따뜻한 말로 위로하지 못하고 용기를 주는 사랑이 없어 그런 불행한 일을 막지 못한 듯이 써내려 갈 수가 있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가. 자식 놓고는 아무도 입바른 소리 할 수 없다는 어른들 말씀도 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자식에 대한 회한으로 좀더 잘 할걸 하고 평소 잘못했던 생각만으로 괴로워할 그 어머니에게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은 이 시점에 두 번 못을 박을 수 있는가.
물론 그런 마음으로 그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쓴 글이 아니라고 항변 할 수도 있겠지만 남의 아픈 마음도 헤아려야 했고 그렇게 구체적인 언급은 피해야 마땅한 일이다. 더더구나 그렇게 안된 사람의 예를 들어서까지 써내려 갈 수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부디 이 글을 죽은 그 학생의 어머니가 보고 다시 한번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정선/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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