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빨고 빨리는 것의 힘겨루기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진공청소기의 파워를 최대로 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장롱 밑의 오래된 먼지처럼 숨죽인 내 영혼도 빨아들이고 온 집안에 흩어져 있는 꿈의 파편들까지 몽땅 빨아들이면 내 집은 진공상태가 되어 하늘로 떠오르고 우리는 머나먼 은하수로 흐를지도 몰라 아! 그런데 저기 카펫 위에 달라붙은 채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대 머리카락이 보인다 머리염색약 훼미닌85호의 색깔 같은 그대 머리카락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드러움인데 아무리 빨아들여도 빨려 들어오지 않는다 어두운 진공청소기 창자 속에서 내 살점은 그대 머리카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먼지의 먼지 같은 내가 세상 먼지들과 섞인 채 그대를 부르고 있다
세상은 나와 너의 힘겨루기일지 모른다며 본격적으로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남아 있어도 먼지의 먼지, 빨려 들어가도 먼지의 먼지가 되는 현실에서 화자는 진공청소기편에서 자신의 영혼까지도 빨아들이고 사랑하는 그대도 빨아들이려 하지만 그대는 버티고 있다. 집은 이제 곧 진공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버티고 있는 그대 덕분에 그렇지 못하는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문인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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