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동안, 사람들 마음속을 지배하였던 이데올로기는 경쟁심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닐 것이다. 남들보다 한발 더 앞서가기 위하여, 단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하여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하였다.
이전의 인류 역사 속에서도 경쟁이란 개념은 분명히 존재하였겠지만 지난 20세기 동안의 경쟁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윈은 자연 생명체들의 진화를 다룬 ‘종의 기원’을 1859년에 발표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힌트를 얻은 허버트 스펜서는 인간사회 발전 역시 치열한 적자생존의 과정이라는 취지로 1873년 ‘사회학 연구’를 발표하였다.
생명체들 가운데 경쟁력이 우수한 생명체만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주장을 스펜서는 인간사회에서의 적자생존 경쟁으로 변형시켰다. 스펜서에 의해 변형된 다윈의 진화론은 자 민족이 타민족보다 우수하다는 민족간의 우월 경쟁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자 민족이 타민족보다 우수하다는 집단 사고방식이 극단적 민족주의 파시즘으로 연결된다.“우수한 민족이기에 우리는 특별하고, 특별한 민족이기에 여타 민족보다 특별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또한 특수한 권리에 상응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우리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위해 열등한 민족들은 희생을 감수하여야 한다”로 연결되었다.
타민족의 희생을 강요하는 파시즘적 민족 우월주의는 세계 여타 민족들의 커다란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세계의 저항은 수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20세기는 민족 우월주의에 기초한 경쟁의 시대였으며, 수많은 인명이 민족 경쟁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민족주의자들이다. 비슷한 생김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같은 민족에게 더 이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인류 전체보다는 하나의 민족만을 위한다는 것은 배타적인 느낌이 든다. 배타적이 된다는 것은 ‘나만을 또는 우리만을’ 우선 시하는 비교적인 경쟁을 유발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선의의 경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쟁 그 자체 속엔 승자와 패자를 내포하게 되며 승자 독식의 집단 이기주의적 탐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는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며, 20세기 인류의 역사는 집단 이기주의의 폐해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어느 한 부류 또는 민족만의 독식이 아닌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기운이 싹트고 있다. 유럽에서의 유로 블럭, 남북미간의 경제 블럭, 아시아 국가들간의 공존 블럭...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글로벌 시대, 21세기엔 더 이상 경쟁이 아닌 공존을 향한 마인드가 우리들의 자세가 되길 기대한다.
김일선
글렌데일 교육구 한국어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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