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에게 삶의 터전의 빼앗긴 수해민들이 주방위군이 나눠주는 식수,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뉴올리언스 컨벤션센터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흉흉한 민심이 더 무섭다”
<뉴올리언스 - 이의헌 특파원>
카트리나는 소멸됐지만 이재민들 앞에는 허리케인이 남기고 간 후폭풍과의 더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에서 4일간 머물다 1일 탈출에 성공한 유광열씨는 “눈앞에서 지붕이 날아가고, 아름드리 나무가 뽑혀 넘어지면서 자동차를 덮치는 것도 목격했지만 그래도 허리케인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뉴올리언스에서는 한인 업소를 포함한 상당수 비즈니스가 이미 약탈 피해를 당했다. 배이튼루즈로도 피난민들이 물밀 듯이 밀고 들어오면서 크고 작은 소요 사태와 총격, 교통 혼잡이 계속되고 있다.
정해천(뉴올리언스 한인회 재무이사)씨는 “민심이 너무 험해진 것 같아 당분간 애틀랜타나 워싱턴에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흑인밀집 거주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정씨는 “우리 이웃 흑인들은 대체로 순박하고 정도 많은 사람들이었다”면서 “자포자기 심정과 군중심리 때문에 그 동안 억눌린 백인에 대한 감정이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얌체상술도 등장했다. 대부분의 주유소가 아직은 갤런당 2달러50센트 내외의 개스비를 받고 있지만, 갤런당 3달러의 가격을 붙여놓은 곳도 있다.
배이튼루즈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휴스턴 총영사관 직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공해 방지세등이 붙어 개스비가 비싼 캘리포니아등 일부 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스비가 싼 이곳의 실정으로 본다면 순식간에 급상승한 가격이다. 라디오에서는 허리케인 피해자를 겨냥한 융자와 보험광고도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미 전역에서 구호물자와 성금이 도착하고 있지만 이를 틈탄 사기꾼도 날뛰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라디오를 통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단체의 기부금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라”고 거의 호소에 가까운 충고를 하고 있다.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인해 민심은 더욱 요동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한인은 “정부는 흑인들이 죽던살던 관심 없다. 오로지 멕시코만의 기름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허리케인이 지나간지 5일이 지나도록 수퍼돔에 방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비난했다.
배이튼루즈와 미시시피주 잭슨 등 피난처에서 만난 한인의 상당수는 이미 타주로 이주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기본적인 복구에만 최소 몇 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업문제는 물론 자녀들의 학교 때문에 어딘가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카트리나 대재난
부시, 현장방문 최대지원 밝혀
방화·폭발 등 치안불안 여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일 미시시피주 빌록시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여성들을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병력과 구호물품이 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현장시찰에 맞춰 뉴올리언스에 도착했다.
연방정부의 늑장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치안을 담당할 1,000명의 방위군과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 행렬이 이재민 임시수용소인 컨벤션센터 쪽으로 접근하자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고 성조기를 흔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군당국은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피해지역에 총 3만명의 주방위군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일 “이번 재해에 대한 연방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시인한 후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너의 피해지역 일부를 헬기로 시찰했다. 미시시피주의 빌록시에 이어 뉴올리언스 공항에 내린 부시 대통령은 캐슬린 블랭코 루이지애나 주지사,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등과 만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내긴 시장은 부시 대통령의 방문을 하루 앞둔 1일 “연방정부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며 부시 행정부의 미진한 구호노력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방위군 1차 병력이 들어오긴 했지만 뉴올리언스의 치안상황은 즉각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재해 최대 피해자인 흑인들은 연방정부의 늑장 대처가 인종차별에 기인한 것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약탈꾼과 범죄자로 둔갑한 일부 무장 흑인들은 2일 시내 일부 건물에 방화를 해 시내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또한 한 화학공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고 슈퍼돔에 수용돼 있던 이재민을 실고 텍사스주로 향하던 버스가 전복돼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뉴올리언스 주변 7개 주의 노숙자 등을 위한 시설이 이미 수용 가능한 인원인 7만6,000명을 모두 채웠고 휴스턴의 애스트로돔도 1만여명을 수용해 초만원을 이루고 있으나 텍사스주는 애스트로돔에 이어 오스틴과 세인트 앤토니오 등지의 수용시설도 개방키로 했다.
뉴올리언스 시정부는 슈퍼돔과 컨벤션 센터 등지의 이재민 가운데 1만명을 타지 수용시설로 보냈으나 아직도 5만명이 대기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이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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