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칼럼
▶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 살면 꿈이 있고 이상이 있다. 희망 없이는 역사를 열 수 없다. 희망은 미래를 보여주는 빛과 같은 존재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세상 빛이 아름답고 음악이 즐거운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당당하다. 세상 걷는 일거수 일투족에 힘이 실려 있다.
만약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무엇이 남아있을까, 낙망과 좌절만 남게될 것이다. 희망을 잃고 세월에 끌려 다니면 세상을 걸어갈 수 없다. 모든 게 멈추고야만다.
2차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것은 1945년 5월이었다. 그 전 해인 1944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1945년 1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이 수용소 안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려죽었다. 그 이유는 194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연합군이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소문이 죄수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참고 견디면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26일이 되고 27일이 되어도 연합군은 오지 않았고 새해가
밝았지만 소식이 없었다. 헛소문인 것을 안 수용소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은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중환자도 살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절망이라는 고독과 싸우는 법이다.
우리들은 수없이 많은 꿈과 희망을 세월 속에 묻고 살아왔다. 잃어버린 꿈을 회복할 시간은 기어가는데 세월은 날아가고만 있다. 세월을 비켜간 사람은 없다. 산다는 것은 세월 위를 걷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 빼기다. 점차 줄어들고 좁아지고야 만다. 자신의 운명창고에서 시간을 빼내 써 먹다보면 가버린 세월이 한바탕 꿈처럼 무정하다.
가는 세월에 속도가 붙는다지만 세월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세월 속에 사는 사람이 다급하고 분주할 뿐이다. 세월은 그저 정해진 속도대로 가는데도 사람들은 가는 세월을 탓한다. 인생황혼이 그렇게 다가온다.
존재가 무로 변하는 허무를 헤아리며 산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생경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면서 희망이 꺾이는 순간들을 수없이 경험한다. 인생전체를 놓고 볼 때 희망이 무너질 때가 가장 위태로운 시기인 게 분명하다. 사기를 잃고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얼이 빠지고 기(氣)가
막혀 정신이 무너지고 마음까지 흩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네 인생을 시(詩)처럼 살 수 없는 것은 내 안에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이다. 주옥같은 세월이 가기 전에 아름다움을 생산해야한다. 그러려면 희망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사르트르는 살아있다는 것은 행운으로 비유했다. 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옛날 당나라의 혜조 선사가 말했다. “땅 위를 걷는 것은 기적(miracle)...” 이라고.
싱그러운 희망만 있으면 위대한 하루를 열 수 있다. 생명이 희망이요, 희망이 곧 생명이다. 고로, 나는 걷는다.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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