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헬렌은 눈을 떴다. 찬란한 햇빛이 얼굴 위에 쏟아져 내렸다.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다. 바로 오늘이 첫 등교 날이다. 머리맡에는 신발과 북백이 나란히 놓여 있고 빙그레 웃음 짖는 엄마가 서있었다. 헬렌의 마음은 콩볶듯 튀었다.
헬렌은 만 7세다. 유치원 1년 중퇴다. 뉴욕 스탠튼 아일랜드로 이민 온 30 중반 부모의 외동딸이다. 부모는 아침 새벽에 훼리 보트를 타고 출근했다. 헬렌은 옆 아파트에 사는 폴란드 할머니에 맡겨져서 밤 늦게야 엄마 품으로
돌아 왔다. 깔끔이 돌본다고 했지만 엄마가 헬렌을 받을 때는 헬렌은 참던 울음을 터뜨리고 큰 소리로 울어댔다. 아기의 모양새는 말이 아니었다.
헬렌은 2살 반이 되도록 말을 할 줄 몰랐다. 폴란드 할머니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갓 이민 온 할머니다. 하지만 음악학교 선생이었던 터라
피아노를 훌륭히 치는 피아니스트였다. 엄마가 헬렌을 찾으러 가면 으레 모차르트나 쇼팡의 소나타를 탔다. 아기는 바닥에 앉은 채로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는 청과상 주인이 가게를 파는 바람에 직장을 잃고, 델라웨어의 웰밍턴으로 이사했다. 공장들이 즐비한 도로가의 잡화상이었다. 이층은 살림집이고 아래층은 상점이었는데, 허름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헬렌의 부모는 즐거운 듯 신바람이 났다. 자기가 처음 주인이 되는 기쁨 때문이다. 상점은 텅 빈 것처럼 쓸쓸했다. 헬렌은 좋아라 고 이층 아래층을 오르내리며 커갔지만, 부모님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밤이면 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동네에서는 렌트 값도 낼 수 없을 만큼 장사가 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부모는 메릴랜드로 이사했다. 그냥 가게를 포기하고 새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볼티모의 다운타운은 조금만 변두리로 가면 험악했다. 방탄 유리사이로 물건을 사고 팔고 했다. 헬렌은 가게 뒷방에서 자고 깨어났다. 거의 햇빛을 볼 날이 없이 부모의 목소리만 들으면서 방에서 외톨이로 자라갔다.
헬렌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방바닥에는 숫한 종이마다, 연필로 크레이온으로 잡동산일를 그렸다. 가끔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큰 눈은 슬픔에 잠겨 그늘져갔다. 부모는 서둘러 프리tm쿨에 입학 시켰지만 헬렌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학교에 놓고 오는 날이면, 금새 선생이 전화해서 아이를 돌려보내곤 했다.
부모는 이제 헬렌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아이 하나 때문에 타향살이를 감수한다고 생각했는데. 위험하기는 해도 돈은 모아지고 여유가 생겨가면서도, 헬렌 때문에 부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는 우연히도 피아노 전공 음악 대학원생을 만났다, 헬렌과 피아노를 갖고 놀아 주면 하고 부탁했는데, 헬렌은 피아노를 보고 너무 신나 했다. 엄마는 그 나이에 말도 더듬는 아이가 무엇을 배울까 했지만 대학원생은 헬렌이 어떻게 음악을 익히 알고 있는지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 무엇이든 그냥 신들린 사람처럼 피아노 건반을 갖고 춤을 췄다. 대학원생은 엄마에게 헬렌의 진도에 대해 그냥 침묵했다.
헬렌은 벌떡 일어났다. 어제 이미 학교 갈 옷을 입고 잔 것이다. 거울 속의 헬렌은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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