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떠날 때 내 곁을 지켜주었으면 싶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오히려 먼저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위암으로 일년간 투병하던 그가 떠난 지도 어느덧 5년이나 되었다. 그를 만난 것은 중학교 입학 직후였다. 한 반이 된 우리는 대번에 서로를 알아보고 단짝이 되었다. 그 뒤 40여년간 이역만리 미국까지 서로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황금은 불로 시험하나 우정은 곤경이 시험한다는 영국격언이 있다. 해마다 그가 떠난 9월이 오면 이 격언이 생각난다. 인생 최대의 곤경이 죽음이라면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보여준 그의 우정은 40여년 우정의 결정체였다 그것은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의 불씨가 되었던 것은 나의 ‘수기’였다. 나는 2000년 한국일보 문예공모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님의 마지막 삶을 주제로 한 생활수기를 응모하여 당선되는 기쁨을 안았었다. 당시 이 기쁨을 말기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던 그 친구에게 전해 주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당선이라도 된 듯 기뻐했다. “야! 축하해. 네 수기 언제 신문에 나오냐?”
그런데 6월초 입상자가 발표된 뒤 한달 안에 게재될 예정이라던 나의 입선작은 신문사의 편집사정에 의해 하루 이틀 미루어지기 시작했다. 석달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나 나의 ‘수기’를 보고 싶어하는 친구의 염원은 식을 줄 몰랐다. 기다리다 지쳐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수기’가 신문에 실린 것은 친구의 임종 닷새 전이었다. 그날은 마침 병상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그의 집을 방문키로 한 날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죽은 듯 누워있었다.
“이봐! 자네가 그토록 보고 싶다던 내 수기가 이제야 나왔어!”
자는 듯 눈을 감고있던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조금만 일찍 수기가 발표되었더라면 그가 읽어볼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아쉬움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닷새 뒤 그의 임종 직후였다. 그의 아내가 전해준 그 사연. 병상예배를 드리고 간 그날 밤, 그가 갑자기 입을 열어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수기 좀 읽어 줘.”
그의 아내는 놓고 간 신문을 들고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수기를 읽으면서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내비치는 작지만, 선명한 표정들을 하나하나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읽기를 마치자마자 그는 나의 수기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꺼져 가는 모든 의식의 촉각들을 곤두세워 놓았었다는 듯 이내 의식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이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온 세상이 깊은 단잠에 빠진 한방 중이라도 주저 않고 전화기를 들어 단잠을 깨워도 마음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그런 친구를 잃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세상이 모두 나를 등져도 그는 나를 꼭 찾아올 진정한 친구였다. 그리운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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