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를 신부 측이 도맡아하던 시대가 지났다. 신랑도 케이크 디자인, 의자배치, 기념품 등 자잘한 일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사진은 한 연극공연에서 남자가 기타를 둘러메고 꽃을 들고 연인의 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청혼하는 모습.
피부 마사지하고…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고… 케이크 디자인 정하고…
패스퀘일 피나텔리(29)가 고급옷 가게 ‘히키 프리먼’(Hickey Freeman)에 1,800달러짜리 모직 맞춤양복을 가봉하러 갔을 때, 그는 결혼 예복이 조금이라도 멋있어 보이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그의 약혼녀는 신부드레스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물 관련 세일즈맨인 피나텔리는 신랑 예복뿐 아니라 결혼식장 안내원이 입을 옷을 고른 뒤, 자신이 낄 백금 팔찌 등 장신구를 구입했다. 9월 18일 결혼 전날 미용실에 들러 눈썹을 번드레하게 칠하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너무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냐는 말에 그는 “예술적인 감각을 살리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소개한 신세대 결혼풍속이다.
“신부가 주관하고 신랑은 참석만” 인식 점차 사라져
식장 예약·좌석 배치·테이블 장식·기념품 종류까지 챙겨
바쁜 직장여성 증가·‘기사도’ 강조하는 TV프로도 한몫
신랑 주머니 노린 마켓팅 부상, 지나친 상업화 우려도
결혼준비에 완벽을 기하려는 풍습은 신부 측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이 바뀌어도 결혼식을 생애 최고의 날로 만들려는 것은 신부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에 신랑도 가세했다. 굵직한 일을 맡아 처리하는 것보다 ‘자잘한’ 몸치장에도 신부 못지않게 열을 올린다.
10년 전만해도 신랑은 피로연의 음악을 맡을 DJ를 선정하는 일 정도에서 머문다. 그런데 요즘엔 의자 배치, 테이블 장식, 케이크 디자인, 하객에 줄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간섭을 하지 않는 데가 없을 지경이다.
뉴저지주 리빙스턴에 사는 브라이언 로렌스는 10월 23일 결혼을 앞두고 여간 바쁘지 않다. 결혼식장을 자신이 골랐고, 케이크 모양과 내용물도 스스로 꼼꼼히 챙겼다. 그저 예식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예식을 신부와 함께 공동 주관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결혼준비 풍속도가 달라진 데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우선 여자들이 커리어에 신경을 쓰느라 바쁘고 힘들어 결혼준비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 결혼시기가 늦어지는 것도 한 요인이다. 또 ‘독신자’(Bachelor), ‘결혼이야기’(A Wedding Story), ‘완벽한 청혼’(Perfect Proposal) 등 TV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면서 결혼준비에서 신랑들이 과거와 달리 사소한 일에도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이유도 있다.
뉴욕의 마켓팅 회사인 NPD리서치는 신랑의 80% 정도가 신부와 함께 결혼준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결혼준비 상담역 줄리 프라이어는 “결혼 수개월 전부터 구체적인 준비사항에 대해 문의해오는 신랑의 전화가 하루 5-6통 된다”고 했다.
남자들의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행사들은 결혼 전 며칠간 이어지는 독신파티 할인 프로그램을 선전한다. 스파는 신랑을 위한 특별상품을 선보인다. 머리와 손톱 손질에서 태닝과 같은 피부 관리까지 패키지로 묶어 광고한다.
청혼방법도 신세대답게 신선하다.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구부려 손을 내밀고 결혼을 요청하는 것은 ‘구시대 유물’이다. 뉴욕의 한 남자는 스스로 박스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박스가 애인이 일하는 학교의 7학년 교실에 배달되도록 했다. 애인은 큰 박스가 교실에 도착하자 놀랐다. 잠시 후 박스 안에서 용수철처럼 남자친구가 솟아올랐다. 애인은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이 남자는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반지를 건네며 청혼했다.
다른 남자는 브로드웨이 근처의 소극장을 빌렸다. 이벤트 기획사에 의뢰했다. 객석에는 100명의 ‘가짜 관객’이 자리했다. 물론 여자친구도 불렀다. 공연이 시작됐다. 잠시 후 이 남자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졌다. 남자친구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여자친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남자는 이 자리에서 청혼했다. 이 색다른 청혼준비는 1만5,000달러짜리다. 돈은 들지만 이색적이란 점에서 효과는 컸다.
피나텔리는 라스베가스에서 4일간 독신자파티를 가졌다. 친구 14명을 불러 성대하게 치렀다. 3만 달러가 들었다. 또 결혼 전에 남자들이 친구들과 스파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마케팅 업체는 1인당 90달러를 받고 치장을 해준다. 머리 손질, 손톱 및 피부 관리까지 전담한다.
피나텔리의 약혼녀 낸시 맨졸리오는 신랑의 눈썰미를 인정하고 신랑이 결혼준비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데 대해 흡족해 한다. 그러나 많은 결혼 상담가들은 신랑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혼의 상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랑을 담아야 할 결혼식에 돈이 앞서는 상황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무언가 잔잔한 ‘사람의 향기, 사랑의 내음’이 사라져간다는 지적이다. 한 결혼전문가는 “이벤트 회사에 의뢰해 해변에 바위를 모아 신부의 이름 스펠링을 써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로맨스를 죽이는 것”이라며 결혼의 지나친 이벤트화를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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