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이태리 여행 중에 토스카나 지방을 거치게 되었다. 토스카나 지방을 지나며 역사책 속에서 알게 된 곳을 직접 보게 되니 가슴이 뭉클하고 감개가 무량했다. 서양사의 한 조각인 카노사의 굴욕이 머리에 떠오른다. 교황 그레고리 7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의 용서와 화해는 시작부터가 복마전이었다.
유럽의 성직자 임명권을 확보한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세속 군주 제후들로부터 서임된 모든 성직자들을 해임하였으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세속 제후들에게 임명된 성직자들을 성직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로 인해 교황 그레고리 7세와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에서 하인리히 4세가 수세에 몰려 황제직에서 파면 당하여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하인리히 4세는 용케 감옥을 탈출하여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여행 중에 머물고 있는 마틸다 백작의 거주지인 토스카나 지방 카노사 성 앞에 무릎을 꿇고 사흘동안이나 석고대죄를 하였다.
때는 겨울이라 하양 눈이 뒤덮여 있었다. 교황 그레고리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사흘동안 눈 속에 묻혀 석고대죄하는 모습이 인근의 모든 주민들과 이웃나라 제후들에게 알려지게 되니 용서를 안 하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대리인인 교황이 악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 두려워 할 수 없이 하인리히 4세를 용서하였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용서를 구한 하인리히 4세는 황제권을 회복하여 힘을 기른 다음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서 받은 치욕을 보복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하인리히 4세와의 싸움에서 로마에서 밀려나 피난을 다니던 중 살레르노에서 죽게 되었다.
서로의 속셈은 따로 있고 외부의 압박과 강요에 의해 억지로 된 용서와 화해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이웃과 이웃, 여당과 야당, 나라와 나라간에 진실이 결여되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좋은 게 좋다는 적당한 타협은 각자의 이익을 위한 불공정한 상거래에 불과하며, 서로를 속이며 그럴듯한 제스추어로 친분을 유지하는 것은 언젠가는 터질 무서운 화산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고대 로마의 웅변가 키켈로는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느니 산 속에서 새끼 낳은 어미 곰을 만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하였고, 어느 무명의 용사는 진정으로 아끼고 나누는 정, 동기와 다를 건가 /이불도 같이 덮자 꿈까지 나눠보세 /이런 정 갖게 되면 겨레 태평하리라 했다.
불란서 격언에 “적이 없는 사람을 경계하여라” 하였다. 즉 언뜻 보기에 주위사람들과 잘 지내면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 같지만, 남에게 경계심을 품지 않고 하는 세련된 테크닉이 있을 지는 몰라도 눈에 보이는 드러난 적보다 더 큰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복병과 같은 존재란 것이다.
음식은 가려먹지 말고 사람은 가려서 사귀라 하였다. 용서와 화해란 거룩한 말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 진정한 용서와 진정한 화해만이 진정한 평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심초 <스프링필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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