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 수피리어 코트 소액사건법정에서 판사가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발언을 듣고 있다. <수피리어 코트 제공>
“판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세상은 넓고 불만은 많다” 법정이라고 살기 등등한 검사와 변호사가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공방을 벌이는 공간만은 아니다. 서민의 삶의 풍경이 그대로 녹아있는 법정, 진정한 ‘시민법정’(People’s Court) 드라마는 소액사건법원(Small Claim Court)에서 펼쳐진다.
컴퓨터 환불·이웃과 분쟁·교통사고 시비 등
억울함 풀려는 엔젤리노들 몰리는‘시민법정’
4일 LA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4층. 아침 일찍부터 5,000달러 이하의 소액사건만 전담하는 이 법정에 억울함을 가진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기중인 케이스 기록을 들춰보니 한인 케이스도 20%는 거뜬히 넘는다. 꼭 억울한 사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남을 괴롭히는 수단으로도 스몰클레임 즉 소액재판은 종종 이용돼 원성을 사기도 한다.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는 법정. 법정근무 3년차 짐 리치 LA카운티 셰리프국 경관은 “알래스카에서 치와와를 칠리도그라고 부르고, 데스밸리에서는 치와와를 핫도그라고 부른다”며 헛웃음 나는 허무개그로 대부분 법정을 처음 찾아 경직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쓴다.
한인 이모(여)씨는 구입한 컴퓨터가 속을 썩였지만 업체가 환불도 안해줘 결국 법정 문턱을 밟게 됐다. 대형 컴퓨터 제작업체로부터 구입한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 수리를 보내고 받기를 수차례했지만 환불 요청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통역의 힘을 빌어 열심히 ‘나의 억울한 이유’를 설명해 나갔지만 판사는 쟁점을 ▲계약서상의 문제로 명확하게 정리했고 ▲계약서상 3년의 보증기간 대로 회사측은 수리 의무를 이행했으며 ▲앞으로는 더 성실히 이행하라며 결국 업체 손을 들어줬다.
통역 통하느라, 판사의 발언 제한 때문에 “제대로 설명할 기회도 없었다”며 이씨는 복도로 나와 조금은 억울해 했지만 ‘할 수 없지 않느냐’며 미련없이 자리를 떴다.
잠시 후엔 이웃간 분쟁으로 법정을 찾은 흑인 할머니가 등장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소음, 쓰레기투기에다가 개까지 함부로 풀어놔 정신적 피해는 물론 환갑 잔치까지 망쳤다는 것.
이웃사촌이 아닌 이웃원수가 돼 법정에 선 이들의 눈에서는 살기가 등등히 흘렀고, 원고인 할머니는 눈물의 호소와 함께 자신의 경력까지 나열해 대며 공신력을 주장했지만 곤혹스런 표정을 짓던 그래시엘라 프레익세스 판사는 결국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며 인자한 표정으로 케이스를 기각했다.
두 이웃이 눈에 핏기를 세우며 퇴장하자 리치 경관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복도에 나가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봤다.
자동차 사고 케이스가 등장하게 되면 판사는 엇갈리는 양측의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천재 물리학자’ 못지 않은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한인타운 올림픽과 크렌셔에서 좌회전신호를 받고 회전하려다가 신호를 무시한 히스패닉 운전자에게 받혔다는 김모씨. 김씨는 상대편 운전자가 증인 여럿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을 보고 “당일 없던 증인들이 어떻게 오늘 나타났냐”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양측은 도로모양과 신호운영 시스템, 차량 동선까지 동원하며 짧지만 강력한 주장을 펼쳤고, 결국 판사는 물리 문제를 푼 표정으로 “피고가 찾아온 증인의 진술과 본인 진술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김씨에게 차량 수리비를 지급하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삭막했던 오전 재판 스케줄이 끝나자 판사도 퇴장하고 법정은 다시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리치 경관은 “정말로 다양한 세상만사 이야기가 이 법정 안에서 펼쳐진다”면서 “그래도 누구나 법정을 찾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곳이 진정 시민법정이 아니겠냐”며 소액사건법원에 대한 사랑을 털어놨다.
■소액 민사소송의 모든 것
미국에서는 1년에 400~500만명이 소액사건법원을 이용한다. 소액사건법원은 적은 금액의 경우 대부분 변호사 없이 단독심 판사 앞에서 약식 재판을 통해 민사분쟁을 해결하는 법정을 말한다. 재판전에는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고, 법정에서 할 말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궐석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로 패소한 쪽이 승소한 쪽에 얼마의 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금액: 5,000달러 이하
*비용: 22달러
*재판일자: 원고와 피고가 같은 카운티 거주시 접수일자로부터 40일 이내.
*종류: 자동차사고, 재산피해, 건물자/입주자 디파짓 분쟁, 채권추심 등
*절차: 판사가 양측 의견 청취. 증거(증인, 사진, 영수증, 계약서 등) 지참 유리.
*결과: 직접 결정하거나 향후 우편통보
*항소가능여부: 피고만 가능
*시효: 판사가 결정하나 케이스별로 6개월~4년까지 나뉨.
*출석: 본인 출석만 유효(예외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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