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어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꺾어 모은 한 웅큼의 꽃다발 -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 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
내가 못 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중략…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서정주(1915-2001)‘나그네의 꽃다발’ 중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것에서 우주의 생성원리를 꿰뚫었던 시인은 “나는 이 꽃으로 나의 적적함을 이겼어”라며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그가 발견한 꽃들은 단순한 꽃들이 아니라 나그네와 같은 인생의 삶, 그 적적함을 배겨내는 지혜와 가치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다음 주자들에게 그 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꽃다발을 묶어 또 건네지기를 바라고 있다. 삶의 지혜는 마치 바톤을 건네주고 받음으로 유지되는 릴레이경기처럼 이어져야 한다고.
문인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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