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무심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당신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도 어느덧 일년이 다 되는군요. 당신과의 35년 결혼생활이 깊어가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변화는 주변 분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간다는 사실이었지요.
우리에게 수 년 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는 순간적으로 불어닥친 강한 회오리바람과도 같았습니다.
두 딸 아이 짝 지워 분가시키고 난 후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나라로 떠났지요. 지난해 당신이 제게 틈틈이 써 놓았던 수필들을 묶어 어서 책으로 내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고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며칠 안돼 당신은 홀연히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셨습니다.
누구나 한번 떠나야 하는 길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는 것이 이토록 안타깝고 허무함이 클 줄 몰랐습니다. 종국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아 당신의 흔적을 찾기도 하지요.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앉아 눈만 말똥거리는 닭처럼 휑한 거실에 앉아있으면 가슴에는 겨울 찬바람만 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일컬어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었나봅니다. 지금은 아득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 흑석동 중앙대 캠퍼스에서 당시 학생이던 저와 공군장교였던 당신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지요.
결혼생활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지낸 세월이 더 길었지요. 척박한 이민생활 속 때로는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거친 세월의 바다를 함께 노 저어가며 당신은 제게 든든한 버팀목과 함께 길벗이 되어 주셨지요. 지금 생각하니 행복한 시간이었고, 이제는 소중하고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정이 많은 로맨티스트 이셨습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했지만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웠지요.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면서도 연민의 정으로 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설렌다고 하셨지요. 당신이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난 지금, 제가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 찡한 설렘과 그리움을 느낍니다.
영원한 이별의 뼈아픈 슬픔은 죽음에서 비롯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인생은 또 망각을 통해서 성숙하기도 하지요.
저는 당신을 통해 또 다시 인생공부를 한 기분입니다. 짧지 않은 제 인생여정을 돌아보면 주님과 당신에게서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이제는 하나님과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하며 슬픔과 외로움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이 떠날 때 5개월이었던 손주가 이제는 막 뛰어다니고 내년이면 네 손주의 할머니가 됩니다. 이제 손주는 당신이 떠나간 빈자리를 메워주며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어 늘 든든하고 감사하지요.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두 아이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요, 제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착한 남편이었기에 우리들의 가슴에는 영원한 사랑으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는 인생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 자세로 살아가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더 좋은 글쓰며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선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shpyun11@yahoo.com
채수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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