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리처드 중사는 지루하지만 느긋하게 활주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는 데도 바그다드 비행장의 활주로는 아직도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30명의 보충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마음이 차가워 왔다. 자신은 직업 군인으로 국가가 명령한 의무를 지켜야 하지만 보충병들은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되었다. 이 전쟁의 목적이 희미하게 느껴지면서 더욱 깊은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 왔다. 신병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입 속으로, 수없이 되내고 있을 때, 시꺼먼 수송기가 크게 입을 벌리고 군인들을 쏟아 놓았다.
본국에서 오는 이들은 우선 미국의 냄새를 가져왔다. 면도 후 바르는 신선한
로션 냄새이기도 했다. 신병들일수록 더욱 근사한 냄새를 풍겼다. 긴 그림자를 그리며 걷는 모습도, 구김이 없는 전투복도, 신선했다. 그 중에 세 명은 리처드의 눈길을 끌었다. 모두가 자기를 닮은 한국인이라는 예감이 번쩍 머리를 스쳤다.
조니 리 이병. 그는 LA 산이다. 부동산 업자의 아들, 버클리 대학 중태. 키 180. 특기는 사격. 상수 김은 서울산, 대학 수학과 중퇴, 키 175, 몸무게 185, 특기 유도. 케니 유는 VA산, 고교졸, 178키, 특기 폭약제조 및 분해. 리처드 중사는 신상기록을 훑어보았다. 자원 동기란에는, 케니는 학비마련, 김 상수는 시민권 조기 획득, 그리고 조니는 생활의 변화를 위해 라고 썼다. 리처드가 세 사람을 자기 소대로 빼돌렸음은 물론이다.
소대장이 부재중인 C소대는 리처드가 지휘를 했고 그는 항시 분대별 잠복 임무 및 비행장 진입로 수색에 앞장섰다. 중대장은 그가 신임하는 리처드를 가장 사고가 많은 지역을 맡기고 안심을 했다. 수도 없이 차량에 폭탄을 숨기고 들이닥치는 저항세력으로 벌써 중대원 10명을 잃고 있었다. 가끔씩 저항세력의 거점인 강 건너 수색은 때도 없이 수행해야 하는데, 이 특수 임무 자원자는 점차로 신병이 오면 이들에게 떨어졌다.
동이 트자마자 9인조가 차출됐다. 리처드는 마음이 아팠다. 세 명 중 누구를 뺄 수가 없었다. 셋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름이 불리어질 때, 셋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흔들리는 트럭에서 조니가 입을 열었다. 엔진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녀석들의 엉덩이에 총알을 박아주겠다”고 장담을 해서 긴장을 달랬다. 모두들 총개머리로 바닥을 쳐서 화답을 했다.
트럭은 굉음을 내고 달렸다. 트럭이 멎고 주택가 진입은 시작되었다. 리처드 뒤에 조니, 상수, 케니, 그리고 5명이 간격을 두고 조심스럽게 따랐다. 조용한 적막을 뚫고 저쪽 옥상에서 AK총이 콩볶듯 이들의 머리 위를 지났다. 모두들 엎드렸다. 리처드의 외치는 소리도 아랑곳없이 조니는 꼿꼿이 서서 조준경을 댄 M16의 방아쇠를 당겼다. AK는 다시는 울리지 않았다. 의심이 가는 이층으로 상수와 케니는 날렵하게 뛰어 올라갔다. 문은 철 쇠로 잠겨 있었다. 상수가 몸을 던졌다. 문짝이 안으로 떨어지며 수류탄을 장전한 두 놈이 발사대를 떨구고 자빠졌다. 케니가 개머리판으로 둘의 턱을 올려쳤다. 한 놈이 저격총을 놓고 쓰러져 있었다. 두 눈 사이에 총을 맞은 듯 피가 솟고 있었다. 상황 끝. 리처드는 천천히 쓰러져 있는 세 놈의 두툼한 저고리를 총구로 풀어 제쳤다. 배 위로 두툼한 폭탄이 감겨 있었다. 모두들 멈? 뒤로 물러섰다. 케니가 앞으로 나섰다. 침착하게 주머니칼을 꺼내서 천천히 뇌관을 끊었다.
상수는 서울이 그리웠다. 휴전선에서 함께 근무하던 전우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리고 숙이 보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흘렀다. 케니는 성경책을 읽으면서, 상수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조니가
코를 골며 잠에 떨어져 있었다.
리처드 중사는 뜨거운 천막 속에 누워서 선풍기가 달려 있는 천장을 바라봤다. 이 동생 같은 세 명의 한국인을 다치지 않고 집에 돌려보내야 할텐데. 선풍기는 헐떡거리며 땀 냄새가 진동하는 천막을 어렵게 식히고 있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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