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며 생각하며
▶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딩동’ 초인종이 요란히 울린다. 급히 현관문을 여니 체격 좋은 우체부가 아담한 소포 상자를 건네준다. 발송주소가 한국에서다. 누가 보냈을까? 황급히 열어보니 DVD 10개가 나온다. 내가 보고싶어 했던 한글 자막이 들어있는 영화들이다. 얼마 전 큰딸과 리치몬드 다운타운에 있는 제퍼슨 호텔에 간 적이 있었다. 이 호텔에서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엔 리가 주연한 그 유명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몇 장면을 촬영했다고 하니 확인도 할 겸 옛 추억이 생각나 DVD를 빌려다 두 번이나 연거푸 보았는데 워낙 영어가 짧아 속속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한글 자막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한 적이 있었는데 눈치 빠르게 큰딸이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으로 주문, 10편의 영화를 엄마 생일선물 깜짝 이벤트로 보내온 것이다.
영화 중 ‘로마의 휴일’은 여고 1학년 때 학교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영화를 보면서 그 유명한 헵번 스타일을 유행시킨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핸섬 가이 미남 그레고리 펙에 매혹되어 강당이 떠나가도록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던 10대 청소년시절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1929년의 헤밍웨이 원작을 바탕으로 부상당한 군인과 간호원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무기여 잘 있거라’ 이 영화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보고 집에 왔을 때 학교를 빼먹은 것이 들통나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밤새 울어 꽈리눈이 되었던 웃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영화다. 공범이었던 내 친구는 지금 보스턴에서 잘 살고 있다.
졸업 후 어느 날 친구 오빠가 졸업선물로 한 턱 쏘겠다고(시세말로) 일찍 들어오라는 엄마의 허락 하에 난생처음 포크와 나이프를 써가며 근사한 저녁을 먹고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쓴 명작 중의 명작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기초로 한 19세기 중반의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광활한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웅대한 스케일의 영상과 숙명적인 로맨스를 그린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표가 매진되어 겨우 마지막 상영을 보고 늦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걱정이 되셔서 길목에서 기다리시던 엄마에게 밤늦게 다닌다고 꾸중을 듣고 엄마는 어쩜 저렇게 이해심이 없나 하고 못내 야속하여 이불 속에서 훌쩍거렸던 철없던 시절. 그 후로 친구 오빠와 데이트하며 미래를 말하곤 했으나 세월의 바람과 함께 우린 서로의 길이 달라 그 오빠는 5남매를 둔 미개인(?)이 되어 성공한 사람 측에서 한국에서 살고있고 난 산뜻하게 딸 둘만 낳은 현대인(?)으로 미국에서 어설픈 글쓰는 낭만에 젖어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산하에 단풍들고 낙엽지는 계절 가을이 온 것 같이 나도 이젠 가을 나이가 됐다. 철없던 시절에 느꼈던 야속함이 내가 자식 낳아 키우며 결혼시키기까지 과정 과정에서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과 항상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가슴 저려하며 눈물지었는지 모른다. 한편 한편의 영화를 감상하며 생생하게 아스라이 멀어져간 먼 그 옛날 꽃다운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나간 추억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려니.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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