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머리를 빗으며 거울을 보다가 ‘어머머! 어머머!’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겉에서 봤을 땐 없던 흰머리가 빗으로 살짝 들췄더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몇 군데 자리를 잡은 데다 정수리부근에 한 가닥은 안테나처럼 뻗쳐 있었다.
내 나이는 35살쯤에서 멈춰버린 줄 알고 살았는데, 어느덧 마흔 세 살을 향해 달음질하는 나의 시간들이 비디오를 빨리 돌리는 것 같이 바삐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맥도 빠지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스물이 될까말까한 교회 청년부 학생들을 보면 귀엽기도하고 좋아 보이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좋을 때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니. 그게 나이 먹는 징조였나 보다. 내가 스물이 막 될 무렵 어른들께서 예쁘다느니 좋을 때라느니 하시면 난 내가 정말 예뻐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젊음이 예쁜 것을...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거야?’ 혼자 중얼거리다가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면서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옷장정리다.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미니 스커트와 알록달록한 티셔츠(거의 다 강렬한 원색), 지퍼가 끝까지 안 올라가지만 살 빼면 입을 거라고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타이트한 청바지, 나이 먹으면서 아무래도 펑퍼짐해지는 등 때문에 입지는 못하지만 혹시나 싶어 걸어놓은 블라우스들, 이제는 두꺼워진 팔 때문에 입기 어려울 것 같은 파티 드레스.
아직도 내가 청춘인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젊은애들한테 미안하던지.... 정리해야지 하면서 다시 옷장으로 들어갔다가 버릴 거라곤 달랑 두 장 들고 나온 나의 질긴 미련과 잘 안 되는 주제파악이 한심해서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내가 중 고등학생시절엔 마흔 셋 하면 후덕해 보이는 아줌마를 연상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 세대라니 거부하고 싶은 것이 진심이다.
그때 허리가 34인치도 넘어 보이는 아줌마가 “처녀 때 허리가 24였는데” 하면 난 속으로 거짓말도 잘 하시네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줌마들은 젊었을 때도 아줌마 모습인줄 알았었다. 이제 내가 나를 보니 이해가 간다. 애 낳기 전엔 허리가 23반에 피부에 우유 빛이라는 소리도 들었었는데 등등...
지금의 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듯 설명하려는 나를 발견한 것이 바로 흰머리를 발견하고 놀란 날이었던 것이다. 은연중에 나도 그렇게 옛날 얘기를 했던 걸 보면 나이 먹은걸 몰랐다는 건 변명이나 거짓말 쪽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주름 댕기고 용을 써 본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인데 그럴 바엔 40세 이후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인자하고 후덕한 모습으로 늙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신앙이 없으면 우울증이라는 게 오는 걸 거야”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니 점심때가 지날 즈음이었다. 그래! 아줌마답게 사는 거야 뭐든지 어울리게 살아야지. 냉장고를 뒤져 콩나물, 채나물, 시금치나물, 고추장을 골고루 꺼내 양푼에 밥을 비볐다. 삼순이처럼...
임은형/ 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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