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의 큰 즐거움의 하나는 음악회에 가서 좋은 연주를 듣는 일이라, 미국에 와서도 오페라도 가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연주회에는 가끔 가는 편이다. 제일 싼 표 값도 전에 내가 다니던 파리나 서울의 음악회 값보다는 월등히 비싸고, 거기다 파킹도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경우, 정말 큰비용이 드는 문화비의 지출이다.
연주가나 레퍼터리의 수준은 아무래도 파리보다는 좀 못하다. 그래도 많지 않은 문화적 자극과 감동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간다. 특히 재능 있는 젊은 대가들이 하면 더 좋다.
그래도 지금까지,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람메르모어의 루치아’를 보고 모두 울면서 30분 이상 박수를 치고, 또 파리의 가보 홀에서 조수미가 직접 자신이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일곱 개 정도 앙코르곡을 불렀던 독주회 등의 감흥은 받아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유럽인과 동양인들이 박수 갈채를 더 잘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분위기가 그만큼 달아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주가는 어디서라도 긴장하며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음악가의 연주회라도 여기서는 관객의 수가 적을 때도 많고, 관객들이 예술가들을 정열적으로 받아들이지를 않는 것 같다. 첫 곡이 끝났을 때 벌써 강렬한 박수로 환영하며 감동을 표시해야 하련만, 박수는 금방 끝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연주가는 크게 소리를 못 내어, 유럽에서 보는 것처럼 정열적인 기쁨이 폭발하는 쟁쟁한 울림을 내지 못하는 악기 소리를 들려줄 때가 많은데, 관객들도 이들의 기를 십분 살려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날 레퍼터리가 일단 끝나면, 관객들은 잠깐 박수를 치다가 얼른 일어나서 나가기 바쁘다. 끈질기게 박수를 쳐서 연주가의 앙코르곡을 몇 개라도 더 얻어들으려는 성의가 부족하다.
말이 아닌 음악과 박수로 음악가와 관객이 서로 감동을 같이 나누고 교감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음악회의 클라이맥스인데, 그것을 즐기지 않고 집에 가기 바쁘니, 그 비싼 표를 사서 왜 음악회에 왔는지가 의심스럽다.
대개는 앙코르곡이 본 레퍼터리보다 더 좋을 때가 많다. 곡이름은 말해 주지 않아도, 열광하는 관객을 기쁘게 해 주려고 미리 준비해 온 곡들은 기교 면에서나 악상에서나 효과가 뛰어난 곡들로, 연주가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살려주는 곡들이다. 이런 곡들을 안 듣고 오면 음악회에 간 보람이 없다.
극장 제일 뒤편 꼭대기의 제일 싼 좌석을 차지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젊은 팬들과 학생들의 열렬한 갈채가 없는 것도 이 곳 풍속이다. 학생 할인 표가 따로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다른 나라만큼 좋은 음악회에 많이 못 가기 때문이다. 이래서 열광적인 관객들도 빨리 끝나버린 연주회의 실망스럽고 어설픈 끝남을 뒤로하고 안타깝게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젊은 연주가의 경력도 좋고 연주곡도 좋은 음악회가 있어도, 그 분위기가 썰렁하고 어설플까봐 가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너무 시내에서 먼 도시의 잘 모르는 극장이나 교회에서 좋은 음악회가 있을 때에는 어딘지 잘 모르고 저녁 때 교통이 많이 막혀 못 갈 때가 많다. 그래서 대가들의 연주회를 놓칠 때도 있다.
문화는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지가 있어야 꽃핀다. 옛날 도시들은 아무리 작아도 한 가운데에 광장과 시청과 교회가 있어서 모든 일이 거기서 이루어졌다. 우리들의 문화활동도 이런 중심지에서 열리려면, 대형 홀은 예술가들에게 대관료를 싸게 받아야 하며, 가능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모든 시민들이 음악과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음악회 관객에게는 파킹비를 따로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관객들은 더 큰 예술적 열정과 감수성으로 연주가들을 맞이하고 환영하여 그들과 같이 오랜 감동의 시간을 누리면 좋겠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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