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아프간서 전사한 미군의 어린 자녀 1,200여명 넘어
만성 두통·복통 시달리다 같은 처지 어린이들과 놀면서 회복
미 최대부대 ‘포드 후드’의 어린 유족 돌보기 긍정적 반향
예산 700만달러 추가… 카운슬러 훈련도 3시간서 1주일로
미군 43.5% 자녀 둬… 유사시 대비 카운슬링 체계화 절실
지 난해 리 깁스가 10세 때, 군목과 육군 희생자 담당관이 아버지의 집에 밤늦게 찾아 왔다. 리는 자지 않고 있었다. 군목과 육군 담당관은 목숨을 바친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조용히 기도하지도 않았다. 방에서 뛰쳐나온 어린 소녀 리가 들은 것은 계모가 목놓아 울부짖는 소리였다. “너의 아빠가 돌아가셨다!”
리의 계모 하이디 리더랜드는 리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텍사스 킬린의 군기지 포드 후드(Fort Hood)의 병원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이 병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리더랜드에게 육군 사회복지국에 가보라고 했다.
그 곳에서도 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리더랜드는 군목에게서 군대와 무관한 일반 카운슬러 명단을 건네 받았다. 리의 정신적 충격을 잘 다스리기 위해 발로 뛴 지 5개월만이었다.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군인의 유가족에게 이 비보를 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유족들을 위무하는 일은 더 더욱 어렵다. 게다가 미군의 43.5%가 자녀를 두고 있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의 죽음을 알리는 것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저 사망 통지서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칠 수 없는 상황이다. 슬퍼하는 유족들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의 자녀들이 1,200명이 넘는다. 이는 전쟁 미망인과 홀아비를 합친 수와 비슷하다. 미군 전사자 소식을 유족에게 알리는 사람들은 유족들의 아픔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저 기본 수칙에 나와 있는 대로 반복할 뿐이다. 냉정을 잃지 말고 평상시대로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고 필요한 간단한 절차를 밟으라는 수칙을 따를 뿐이다. 이들은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카운슬링 훈련은 더 더욱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군은 전사자 유족들을 돌보는 단일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각 군마다 다르고 군부대마다 다르다. 통일성이 없다. 유족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들고일어났다. 국방부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 최대 군부대가 있는 포트 후드가 이러한 개혁의 선봉에 섰다.
아버지를 잃은 리는 이제 11세이다. 포트 후드는 리와 같이 아버지를 졸지에 잃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리의 아버지는 이라크에서 차량순찰 도중 길가에 설치된 폭탄에 의해 희생됐다. 그러나 리는 1년 전에 사망한 아버지에게 계속 편지를 썼다. 이 편지를 넣을 상자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다른 소녀들과 함께 했다. 포트 후드가 주선해 준 한 지역 군인병원에서.
이 병원에 모인 어린이들은 희생된 아버지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했다. 서로 즐겁게 재잘댔다. 하루 이벤트에 불과했지만 이벤트 말미에 어린이들은 모두 촛불을 켜고 전쟁터에서 희생된 부모의 넋을 기렸다. 리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 만성 두통과 복통에 시달렸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트 후드의 도움으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다행히 남편이 아직 군인생활을 하고 있어 다른 희생자 유족들에게 카운슬링을 해주고 위로 이벤트를 마련해 주고 있는 데비 부시의 역할을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은 희생자 유족이 너무 많다. 이러한 봉사자들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데비는 딱한 사정에 처한 유족들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국방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전문 카운슬러를 확보해 유족들의 정신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부시 대통령이 장성들을 대동하고 포트 후드를 방문했을 때 데비는 가슴 아픈 얘기를 거침없이 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구체적인 시정 조치가 하달됐다.
육군 전사자 유족들을 위해 올해 예산에 700만달러를 추가했다. 그리고 카운슬러는 종전의 ‘3시간 병원 현장교육’ 대신 하루 병원 현장 학습을 포함해 총 1주일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군은 오는 7월 의회에 보고하게 될 내용에 포드 후드에서의 개혁조치의 성과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그만큼 개혁 실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전사자 유족, 특히 어린 자녀들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도록 고안돼야 한다. 어린이들은 종종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남편을 잃고 오열하는 아내와, 아내를 잃고 땅을 치는 남편에만 초점을 맞추어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패턴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부산물이다.
<박봉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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