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횡단보도 앞에 있는 중인데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시고
한 손으로는 비닐봉지를 꼭 잡으시고
어르신 한분이 흐릿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길을 물어 오신다
주변 사람 헤치고 귀를 대었는데
내가 잘 모르는 길이다
어물어물하고 있자니까
한 젊은이가 다가서며 거든다
젊은이 말이 신통치 않다는 듯이
파마머리 굽실한 아주머니 한 분은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어 거든다
아주머니 말도 석연치 않은지
웃는 상, 여학생 더 맑아지더니
파란 신호등 보며 우선은 건느셔야 한다고
어르신 부축하고서 보조 맞추며 건너간다
흐릿한 목소리를 에워싸고 발구르던 사람들도
호위하듯 뒤따라 천천히 건너간다
갑자기, 맑아진 날이었다.
길을 묻는 노인에게 길을 가리켜 드려야겠지. 그런데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가리켜드린다면 그 어르신 그 곳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할아버지 파란불이 켜졌으니 길부터 건너세요.” 라며 여학생은 노인을 부축해 길을 건넌다.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길을 건넌다. 오랜만에 맑아진 날을 대하듯 흐뭇한 마음이구나.
문인귀<시인>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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