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성공회대 대학광장에서는 천여명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뜨거운 축제가 열렸다.
가수 윤도현, 강산에, 안치환, 한영애, 장사익 등이 공연을 하고 문화계, 재계, 정계,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참석한 이들의 숫자로는 좌파쪽에 있는 인사들이 더 많았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는데, 이 날의 행사는 사실 콘서트로 시작된 게 아니라 어느 정년 퇴임하는 교수의 퇴임식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사십년 전쯤이다. 서울대 상대 신입생 환영회의 마지막, 공식적인 순서가 끝나고 사회자인 4학년 선배가 어떤 경제학과 졸업생을 소개했다. 아무런 개인약력 소개도 없이 소탈한 차림으로 그냥 1학년 신입생 후배들 앞에 선 그 선배는 한 사오십분 동안 그냥 독백처럼 자기 지나온 얘기를 했는데 고교를 막 졸업하 고 청운의 꿈을 품고 대학의 첫날을 맞이 하는 후배들은 대강 이런 것들을 듣고 배 웠다.
설탕은 외화 없는 후진국 한국에서 먹을 게 못되니 당원(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국내생산 가능했던 설탕 대용품쯤으로 알면 된다)을 먹고, 앞으로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해서 취직이나 할 생각만 하고 대학을 다니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된 게 아니고, 요즘의 세상에서 영어를 잘 한다는 건 일제시대에 일본말 잘한 것과 다른 게 없으니 자랑할 게 못된다.
당시 어린 후배들은 얘기 재미나게 잘하고 깔끔하게 생긴 그 선배가 어떤 이인 줄 잘 모르나 여러 재주가 많고 인간적 매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 입학식부터 삼년이 지난 어느 날, 도하 신문들에는 중앙정보부의 발표로 서울대 경제과를 중심으로 활동한 소위 통혁당 사건이 대문짝 만하게 실리고 그 주범으로 신영복씨를 거명했다. 그는 그 때 경제과 대학원을 마치고 숙명여대에 강의를 맡아 나가다가 군 근무로 사관학교 교관을 했는데 군인이란 신분 때문에 딴 사람들과 달리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애초에 물론 사형이 구형되고 우여곡절을 거쳐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했다. 출옥 이듬해에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주어 17년간 강의하고 퇴직한 것이다.
신영복씨를 모르는 이들은 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이라고 하면 알 수 있는 분들도 있고, 또 최근에는 ‘처음처럼’이란 소주가 있는데 그 병의 넉자 글씨가 그의 필체라고 하면 알 분들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서 필자는 그를 무척 아까워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인데 지금 한국의 처지에 비추어 그의 개인문제가 개인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이곳 지면으로는 할 얘기를 다 할 수 없으나, 필자는 한국의 좌우 이념투쟁과 현재의 사회경제의 어려움이 군부독재에서 민주화 시대의 진입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경륜부족으로 야기된 것으로 본다.
정말 우리는 이런 사회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만들 능력이 있는 민족이다. 좌우가 싸울 게 아니라 좌우에서 좋은 면을 뽑아서 긍정적 사회동력으로 써야 한다. 많이 모자란 대통령이라도 도와서 잘 하도록 해야 국력 낭비가 없다.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만들지 말고,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모아서 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젊고 늙고를 떠나서 모두가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팀이 지면 끝나버리는 월드컵 축제가 아니라, 신영복씨의 퇴임잔치에서 보는 그런 축제가 더 많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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