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니 비로소 푸르구나
아랫것 윗것 옆엣것 죄다 푸르름을 띨 때, 상록수는 돋보이지 않는다. 주변것들이 하나둘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갈 때, 상록수는 비로소 상록수다움을 뽐내기 시작한다. 그 즈음은 대개 가을이다.
북가주 한인사회의 유서깊은 축구동아리 SF상록수(회장 이병철, 감독 백종만)도 가을에 접어들면서 본때를 보이고 있다. 한인 축구클럽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4월부터 참가한 마린카운티 오버40 리그에서 오랜 승리가뭄을 겪었던 상록수가 시즌 막바지인 9월에 들어 2연승을 포함해 3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지난 9일(토) 산라파엘 매키니스 나이키 구장에서 열린 밀밸리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대0 완승을 거두며, 북가주 작은 월드컵 또는 챔피언스리그로 불리는 마린C리그 데뷔 첫해 첫 승리의 감격을 맛본 상록수는 1주일 뒤인 16일 같은 장소에서 아미스타드를 3대1로 따돌리며 첫 연승의 환희까지 맛봤다.
리그 중반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전력저울질은 고사하고, 상대팀이 15분-20분 간격으로 후보선수들을 기용하며 노쇠한 주전들의 몸 생각을 해가며 플레이한 것과 달리 SF상록수는 만성적 선수 부족으로 90분 내내 무교체 경기를 펼치는가 하면 상대팀 선수를 빌려(?) 상록수 골문을 맡기는 등 악조건 속에서 리그를 강행해온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뽕나무밭이 바다로 바뀜) 격세지감(세상이 확 뒤바뀐 느낌) 연승 퍼레이드였다.
상록수의 승리 릴레이는 23일 아일랜드계 주축 ‘더 보이스’와의 일전에서 아쉽게 쉼표를 찍었다. 2대2 무승부, 그러나 내용상 압도적 우세였다. 이득민 선수가 골문을 지키고 백종만-이재필-배용수 선수가 3백 수비라인을 구축한 가운데, 믿는 발 신성재 선수를 최전방 중앙에 배치하고 발빠르고 부지런한 조행훈-최원 선수로 양 날개로 포진시킨 상록수는 이상호-정석화 선수가 미드필드에서 경기완급을 조율하며 초반부터 상대진영을 압박해 후반 중반까지 2대0으로 앞서나갔다.
상록수가 깜박 흔들린 것은 조행훈 선수가 보이스진영 왼쪽을 파고들다 무릎 부상으로 교체되고 최원 선수가 피로누적으로 벤치로 물러앉은 약 20분동안. 보이스는 홀로 남은 신성재 선수를 집중마크하면서 반격을 개시, 순식간에 헤딩으로 2골을 만회했다. 상록수는 전력을 가다듬어 마지막 10분동안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신성재-정석화 선수의 슈팅이 거푸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종료휘슬과 함께 날린 이상호 선수의 회심의 일발마저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면서 3연속 승리의 으뜸기쁨 대신 3연속 무패의 버금딸림 기쁨으로 대신해야 했다. 후반 초반 상대진영 우중간에서 문전으로 찔러준 이상호 선수의 송곳 공간패스에 이은 신성재 선수의 슈팅이 상대 골네트를 갈랐으나 옵사이드 판정으로 무효처리된 것이 아쉬운 한판이었다.
상록수는 오는 30일 오전 9시 산라파엘 탐하이스쿨 구장에서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강호 레알 마린 스퍼스와 최종전을 갖는다. 시즌 초반 장마에다 다른 대회 출전 등으로 치르지 못한 경기가 있어 이날 더블헤더를 치를 수도 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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