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이
드높은 담이었다면
담쟁이덩굴은 더듬더듬 기어올라가다가
허공을 훌쩍 넘어갔을 것이다

허공 너머에
또 무슨 알 수 없는 담이 겹겹이 치솟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넘어가고 넘어간 뒤에도 무수한 덩굴손들은
끝없이 뻗어 나가고 힘차게 뻗어 나가지 않았을까

참으로 질긴 담쟁이덩굴이라면
담쟁이덩굴의 근성으로
허공이 바다 밑으로 주저앉는다 해도 기어오르고
줄기가 토막 당해도 거대한 낙지 발처럼 꿈틀꿈틀 뻗어 나갔을 것이다

최승호 ‘담쟁이덩굴’전문

담쟁이덩굴의 근성은 기어오르는 데에 있다. 무엇인가가 잡히기만 하면 기어오르는 그 근성은 허공도 담으로 알고 기어오를 만 하다. 우리도 여기까지 살아왔으니 그 담쟁이덩굴 근성으로 한번 기어올라보자. 허공이 바다에 가라앉으면 낙지발이 되어 꼬물꼬물 뻗어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문인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