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간선거가 끝났다. 수개월동안 승리를 위해 죽어라 뛰어 온 후보들이 하룻밤 사이에 승자와 패자로 갈렸다. 승자들은 환호에 휩싸인 채 승리를 자축하기에 여념이 없다. 승리가 주는 짜릿함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속 쓰린 패자들은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 웃음짓지만 짙게 묻어 나는 쓸쓸함만은 어쩔 수 없다. 치열했던 레이스가 승자 선언과 함께 막을 내렸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린다. 레이스가 주는 긴박감도 높다. 치열한 접전일 경우 선거전과 개표는 마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월드컵 축구 보듯 밤을 새워 개표를 지켜봤던 경험이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간혹 ‘아름다운 패배’ 혹은 ‘위엄있는 패배’에 관한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철저히 승자만 기억될 뿐이다. 그래서 선거는 스포츠에 종종 비유된다.
스포츠와 선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명징성이다. 작가 닉 혼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포츠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 잔인할 정도로 명쾌한 성격이다. 예건대 실력은 없지만 운 좋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라는 것은 없다. 스포츠에서는 결국 진정한 실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또한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채, 골방에서 굶고 있는 천재 스트라이커 같은 것도 없다.”
그러한 명징성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삶속에 스포츠를 끌어 들인다. 자기가 좋아 하는 스포츠를 삶에 즐겨 비유하곤 한다. 골퍼들은 “골프장에 인생의 지혜가 있다”고 하고 달리기를 하는 러너들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그러고 보면 위험한 도전, 땀과 눈물, 환희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스포츠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또 스포츠를 통해 배운 지혜와 교훈들은 삶에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삶이 스포츠와 똑같을 수는 없다. 삶이 스포츠처럼 혹은 선거처럼 명징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살벌하고 곤고할까. 살아간다는 것이 실패와 성공으로 점철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승리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 붙어 있는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모래벌판이다. 달과 지질조건이 가장 유사하다고 해 우주인들의 훈련장소로도 이용되는 이 사막에서는 10여년에 한번씩 장관이 펼쳐진다. 비가 흠뻑 내리면 사막속에 있던 칼렌드리니아 씨앗이 꽃을 피워 온 사막이 형형색색의 야생화로 뒤덮이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 생명이 넘쳐 나는 기적적인 현상에 칠레 사람들은 ‘일생일대의 경험’이라며 앞다투어 이곳을 찾는다.
사막의 야생화 씨앗들은 뜨거운 모래속에서 수십년을 견딜 수 있다. 숨 죽인채 땅속에 묻혀 있던 꽃씨들은 비라도 흠뻑 내리면 감추고 있던 생명의 힘을 일시에 분출한다. 죽은 듯 보인다고 다 죽은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실패로 이어진 사막같은 삶속에도 아름다운 야생화의 씨앗이 배태돼 있어 언제가 붉은 생명의 힘을 발산해 낼지 누가 아는가. 수학문제를 풀 듯 명쾌하게 풀리고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다. 사랑이나 그리움을 수치화 할 수 없듯이 삶의 의미는 스코어로 계량화 할 수 없다.
작가 혼비는 군더더기가 없어 스포츠가 위대하다고 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은 때론 버거울 정도로 군더더기를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속에 감춰진 씨앗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스포츠와 선거의 명징성을 통해 인생에 유용한 원리는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스포츠와 선거의 본질이 인생의 궁극과 닿아 있지는 않다. 우리 앞에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호함과 비명징성. 이 때문에 우리는 삶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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