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끝내고 돌아오는 남편을 맞기 위해 사택(社宅) 골목 어귀에 다소곳이 서 있는 새색시의 스웨터 사이로
사글세방 연탄이 꺼지고 으슬으슬한 저녁 “이것 좀 먹어봐.” 불쑥 방문을 열고 비지찌개 한 그릇 들여놓는 옆방 할머니의 메마른 손 사이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을 따서 입에 넣고 재잘거리는 횡단보도 건너편의 아이들 얼굴 사이로
오래된 앨범에 끼워진, 중국집 배달을 나갔다가 덤프트럭에 깔려 죽은 불알친구 동석이의 오토바이 사이로
“하여간 굶지는 마라, 뭘 해도 몸이 성해야지.” 식당에 일 다니는 막내고모님의 늦은 저녁 전화 사이로
몸 달궈 들이박는 저 눈물
맹문재 (1963~)‘첫눈’전문
가난한 사람들에게 첫눈이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비어있는 쌀독과 연탄창고부터 걱정해야 하는 일이므로.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가난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진정으로 사람냄새가 난다고 할 수 있는, 인정이 철철 넘치는 동네. 이곳으로 내리는 첫눈이야말로 얼마나 애틋한가. ‘몸 달궈 들이박는 저 눈물’의 의미가 한없이 따스하게 읽히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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