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향기로운 교회 이현호 목사
새크라멘토 땅은 굴곡이 없어서 싱겁다. 그저 허허롭게 펼쳐진 벌판에 넓고 좁은 길들이 사방으로 뻗어있고 길과 길 사이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싱겁기 짝이 없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이 도시를 맛깔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강(江)이다. 도심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은 이 도시에
운치와 살맛을 더해준다.
나는 틈날 때마다 강변을 거닐곤 한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 좋다. 저녁녘에는 석양이 아름다워서 좋고, 도시 전체가 한숨을 돌리는 여유가 느껴져서 좋다. 그 시간에 강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으면 마음이 참 차분해진다. 때로는 하루를 뒤돌아보면서, 또 때로는 한나절 만큼이나
짧게 느껴지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혹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기도를 조용히 드리면서, 혹은 아무 생각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걷는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강물이 얼마만큼 달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길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들을 보고 겪어왔는지 짐작할 길도 없다. 누가 뭐래도 그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소리 없이 제 길을 흘러갈 뿐이다.
강물은 제 여정에 무엇이 동행하든지 그저 마다하지 않고 함께 갈 뿐이다. 어느 산골짜기 시냇물이 “같이 가자~”하면 같이 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동행하자~”하면 동행한다. 쪽배가 제 위에 얹어지면 쪽배와 함께,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과 함께, 쓰레기가 던져지면 쓰레기와 함께 …
그렇게 제게 오는 모든 것을 품고 간다.
강물은 억지로 길을 뚫고 가지도 않는다. 자기를 막는 것을 탓하는 법이 없이 막히면 막히는 대로 굽이굽이 돌아간다. 굽이굽이 돌아가지만, 아니 그렇게 돌아가기에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멈추지 않고 가기에 강물은 역사(歷史)가 된다.
강물은 제 길을 잃는 법도 없다. 굽이굽이 돌고 돌지만 결코 제 길을 망각하지 않고 끝내 바다의 품에 이른다. 거기서, 모든 다른 강물들과 만나 한 몸이 된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모든 자녀들이 하나이듯이….
강물을 바라보면 강이 더 좋아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품으면서, 아무도 탓하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약한 듯 강하게 제 갈 길을 멈추지 않으면서, 끝내 인생의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아무도 탓하지 않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기에 강물은 점점 더 넓어진다. 넓어지는 만큼 더 힘차고 편안하고 풍성해진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리고 기도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강물처럼 그렇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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