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시애틀 강우량은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 폭우와 폭설이 지나가더니 며칠 전 강풍이 몰아쳤다. 높고 덩치 큰 나무가 많은 이 지역은 강풍이 불면 심란하다.
수분이 넉넉한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기에 쉽게 쓰러진다. 이번 강풍에도 그랬다. 바람에 견디지 못해 쓰러진 나무는 달리던 차를 덮치고 집을 덮쳐 사상자를 냈다.
더욱이 전선에 나자빠진 나무들은 수백만 명을 어둠 속 엄동의 추위로 몰아 넣었다. 주요 라디오 방송은 하루종일 위험에 처한 주민과 통화하며 살피고 위로하느라 분주했다. 카나다와 타주의 전기공들이 복구를 위하여 달려왔다.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자식 손주들 걱정에 땅이 꺼지신다. 나와 사정이 다를 수 없는 어머니. 내 추위를 챙기느라 미쳐 부모님을 생각치 못했었는데. 자식이 따를 수 없는 어머니의 정을 새삼 느꼈다. 다행히 부모님이 계신 곳은 하루 만에 전기가 복구됐다. 어머니는 불이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음식을 마련하시고 새끼들을 불러 모으셨다. 단칸방엔 어머님의 마음을 등잔불 삼아 십 수명의 식구들이 오랜만에 정을 맞댔다.
한인 라디오방송을 켜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왔다. 주 시애틀 대한민국 총영사였다. 강풍으로 인한 비상사태 상황과 대처요령, 도움을 청할 비상연락처 등을 전하며 교민의 어려움을 다독였다. 엿새간의 추위와 어둠 뒤에는 이웃과 부모형제뿐 아니라 등잔불 밝히고 살았던 모국이 함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애틀의 강풍은 실컷 세상을 흩어 놓았지만 그 만큼 사람의 정은 더 모이게 했다.
고경호/시애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