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해를 맞아 한인사회에는 많은 신년하례 모임이 있다. 나는 지난 11일 한인타운 모 호텔에서 미주 문인협회 신년하례 모임에 참석했다.
식장 입구에서 접수를 끝내고 나니 묵직한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준다. 유난히 무거운 보따리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슬쩍 선물꾸러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상품권도 아닌 쌀 한포대가 들어있지 않은가.
처음은 “뭐 이런 것을 다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순 내 머리 속에서는 아련한 추억이 전광석화처럼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 옛날 어릴 적 시골에서의 촉촉한 추억 말이다.
요즘 자라는 젊은 세대들이야 우리 1세대들이 가슴 아리게 겪은 옛 보리 고개 사연을 알리 있겠는가마는, 60여 년 전 우리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혼돈스런 사회상황 속에서 가난에 허덕일 때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6.25 남침으로 전쟁의 비극이 벌어져 민족은 도탄에 빠져 헤맬 때 하루의 삶이 허기로 길기도 하던 시절, 보리쌀도 충분치 않아 보리죽으로 연명 해 온 쓰라린 과거를 잊을 수가 없다.
그처럼 궁핍했던 시절, 농촌에서는 한 여름 논에서 짙푸르게 자라 올라오는 벼만 바라보아도 배가 불러오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추수를 끝내고 마루 위에 벼 가마가 쌓여있으면 부자 됐다는 덕담을 주고받곤 했다.
그처럼 쌀이 귀하다보니 광속의 쌀독 안 쌀알을 벅찬 마음으로 황금싸라기를 만지듯 어루만져 보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이며 간사한 것인가 보다. 오늘날 이 풍요로운 시절 특히 이 미국 땅에서는 웰빙이니 뭐니 하면서 쌀과 육류마저 냉대를 받는 요즈음, 우리의 고귀한 양식을 감사 할 줄 모르고 너무 홀대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시 문인협회는 문인다웠다. 조그만 정성으로 추억을 이끌어내어 감동의 효과를 주는 시적인 선물, 검소하면서도 감회를 안겨주는 멋있는 새해 선물이 아니겠는가.
외롭고 거친 이국의 황야에 문인의 탑을 굳게 세운 우리 미주문인협회. 이제 새 회장단과 이사진이 선출되었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근 미주 문인협회의 앞날에 문운의 서광과 가족 같은 회원 간의 화합으로 존경받는 단체가 되기를 기대 해본다.
이제 모든 우리 한인단체들도 다음부터는 이같이 심의(深意)가 함축돼있는 간소한 선물을 주고받는 풍토를 계획해봄도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물질적이기보다는 서정적 온기가 풍기는 간결한 선물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선물중의 값진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날 저녁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선물을 건네자 아내는 “오늘 우리 식구 일용할 양식을 벌어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며 내 어깨를 주물러 준다.
<송정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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