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세리토스 퍼포밍 아츠센터에서는‘미주 한인의 날’제정을 축하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정상급 수준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얼리니스트인 데이빗 김을 비롯해 LA매스터코랄의 소프라노 이효정 등 정상급 음악인들이 출연한 꽤 괜찮은 연주회였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참가했던 연주자의 말은 우리 음악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했다. 연주자의 말인즉 “한인 지휘자 때문에 외국 연주자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연주자들은 지휘자를 보지도 않았다. 지휘를 보면 오히려 헷갈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LA 다운타운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인 음악회 지휘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당시 연주자들은 제1 바이얼리니스트의 몸동작에 맞춰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지휘와 연주자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인 음악계에 내세울만한 지휘자가 없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인타운에서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릴 때마다 지휘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음악계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분야가 ‘지휘’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물론 좋은 지휘자 하나를 발굴하는 것은 좋은 연주자 하나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오케스트라를 제대로 지휘하려면 각 악기의 특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연주회 하나를 성사시키기 위해 장소 대여부터 스폰서 확보까지 모든 책임이 지휘자에게 주어지는 한인 음악계의 이상한 관행도 좋은 지휘자가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휘자의 실력 부족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지휘자는 무대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소리를 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복잡한 일을 한다. 지휘자는 소리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지휘자의 수준이 곧 오케스트라의 수준”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중국 국립오케스트라는 대륙적 기질은 있지만 세련미는 부족한 수준이었는데 수교를 기념해 미국의 유명 지휘자가 건너가 얼마 동안 연습한 뒤 공연한 적이 있다. 이 때 관객들은 ‘이게 과연 같은 오케스트라였나’하고 귀를 의심해야 했다. 지휘자 한 사람이 바뀌었는데 전혀 다른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 바이얼린 연주자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지휘자들중 겉멋만 든 사람들이 있다. 지휘 도중에 멘트도 하고 그러는데, 주빈 메타나 로린 마젤 같은 ‘마에스트로’가 멘트할 때나 멋있지, 지휘도 못하면서 멘트만 하려고 하는 모습은 영 아니다. 음악이나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정대용> 특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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