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귀뚜라미 소리였다. 여러 사람들이 듣고 그렇다고 확인했다. 처음에는 한 마리 같기도 하고, 두세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한 마리가 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어느 날 뜻밖에도 내 오피스의 벽 속인지, 천장인지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벌써부터 청아한 소리로 귀뚤귀뚤 거리고 있었다. 매일 듣는 그 소리에 버릇이 되어, 이제 귀뚜라미가 울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귀뚜라미도 틈틈이 브레이크를 하는지 울음을 딱 그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조용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혹시 이사를 가버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다.
얼마 전에 같은 빌딩 안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가 나의 귀뚜라미를 자기 귀뚜라미라고 고집한 적이 있다. 그 친구에 의하면, 자기 사무실 어디에서 몇 달 동안 귀뚜라미가 울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울음소리가 시끄럽고, 일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귀뚜라미를 쫓기 위해서 벽을 두드리고 유리창을 흔들고 했단다. 그 뿐만 아니라 시청의 허드레 일하는 사람을 불러 소리의 근원을 찾아 없애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이 귀뚜라미는 계속 울어댔다. 그리고, 어느 날 싹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내 사무실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아니, 피난을 온 것일 터였다. 내 사무실의 귀뚜라미가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그 친구는 귀뚜라미를 모질게 취급한 것이 약간 후회스러워 졌는지, 내 사무실로 자주 찾아와서,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기만 하는 나의 귀뚜라미를 방문하곤 한다.
귀뚜라미는 가을밤에 우는 곤충으로 한국에서는 알려져 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도 울고, 으스름 달밤에도 울어대는 그 소리는 처량하고, 슬프고, 청승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미국의 귀뚜라미는 계절에 관계없이 울고 싶을 때면 언제는 우는 것 같다. 숫 귀뚜라미가 양쪽 날개를 서로 부딪혀서 만들어 낸다고 하는 그 울음소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때로는 큰 소리로 씩씩하게, 때로는 낮고 부드럽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한국어로 말해서 귀뚜라미는 언제나 ‘운다’고 표현된다. 귀뚜라미가 ‘노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귀뚜라미가 노래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옳다. 귀뚜라미 세계에서는 오로지 수컷만이 노래를 부르는데, 암컷을 위해 부르는 세레나데로 해석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날개를 빠른 속도로 마찰시켜서 큰소리로 노래할 때는 멀리 있는 암컷에게 러브 콜을 보냄과 동시에 경쟁자들을 내쳐버리기 위해서라니, 사랑을 얻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까이 있는 암컷을 유혹할 때는 낮고 부드럽게 귀뚤거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 오피스의 귀뚜라미는 참으로 가엾고 불쌍하다. 그것은 벽 속인지 천장 속인지 모를 어두운 공간에 갇힌 채, 들어줄 암컷도 없는데 저렇게 매일 날개를 부딪히고 있다. 어쩌다 길을 잃고 빌딩 안의 어느 공간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저렇게 귀뚤귀뚤 거리는 나의 귀뚜라미의 노래는 차라리 울음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귀뚜라미가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귀뚜라미도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은 왜 노래 안하는 거지? 다음 이사 갈 때는 내 방으로 와라, 오며가며 한마디씩 한다. 언제인가 나의 귀뚜라미도 아예 노래를 그쳐 버릴 날이 올 것이다. 빌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았거나, 사랑의 노래가 효력을 보았거나, 가 그 이유이기를 희망한다. 그 날까지는 제발 이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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