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쯤 습관에 따라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아내는 어느새 일어나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놓고 5시쯤 새벽예배를 위해 교회로 떠났다. 7시부터 일하기 위해 병원을 향한다.
병원에 도착하니 제왕절개 수술환자 두 분이 예약돼 있다. 예정대로 잘 마치고 무통분만 환자를 위해 마취를 주고 나니 어느새 11시가 조금 지났다. 오후 2시경에 또 다른 제왕절개 수술과 무통분만 시술이 있었다. 숙직실에 가서 SBS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 연속극으로 머리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고 6시경 저녁식사를 했다. 밤 9시경 갑자기 간호원이 와서 초응급 제왕절개수술이 있다고 하여 급히 수술 방에 가보니 환자를 수술침대에 눕히면서 빨리 마취 주라고 성화다. 약 30년 마취의사 생활에 오늘같이 황급하고 어렵게 마취를 준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산모의 안전한 마취에 너무 신경을 쓰고 나니 끝난 후 피로가 엄습해온다. 그러나 쉴 수도 없다. 분만진행이 안되고 태아의 상태가 안 좋은 또 다른 제왕절개 수술이 뒤따라 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데 2시경에 또 수술이 있다고 간호원이 알려준다. 모든 수술이 끝나니 새벽 3시 반이 되었다. 방에 가서 잠시 눈을 붙이다 6시경에 아침 수술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참으로 피곤한 24시간이었으나 산모와 태아를 구했다는 자부심과 마취를 사고 없이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마취의사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 권하고 싶지 않다. ‘아들은 의사 시키지 말고 딸은 의사에게 시집보내라’는 말이 얼마나 공감이 가는지 새삼 피부로 느낀다.
서영석/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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