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질하며 추적추적 걸어왔구나
노을에 발목이 빠지면서, 빈 하늘에 버린 이름들
속에서 해진 나를 찾고, 찾으며
어허, 한 번 웃는 것인데 쓸데없이 저울질하며
여기까지, 언제나 시작인 마지막의
노을, 그 실뿌리에 감기며 문득
새빨개지는 피를 흔들어보는 것이구나, 어허
살어라 살어라 하는구나, 그래, 노을에 흥건히
빠진, 빠져 있는, 이승의 발목을 건지면서
뒤돌아보면서, 기우뚱거리면서
소금기 많은 웃음을 몸 밖으로 흘려봤구나
저녁이면 사람의 서쪽이 붉도록 아픈 병
전염은 되지 않으나 여간해선, 고치기 어려운
어허,
이문재 (1959~) ‘황혼병’ 전문
미리부터 죽음에 당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저녁 무렵이다. 나도 자주 가보는 곳이지만, 황혼을 배경으로 서 보면 산다는 것이 참으로 별게 아니구나 싶다. 결국 여기에 당도할 것을 그토록 몸부림쳤나 싶은 것이. ‘서쪽이 붉도록 아픈 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질병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대손손 대물림 되어지는, 생이라는 질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하여.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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