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초 K한테서 전화가 왔다. 가족들 안부, 한국의 돌아가는 분위기와 인심, 친구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Y가 10월, S가 11월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얘기를 했다. “인생이 너무도 허무해” 독백처럼 말하며 한숨 쉬는 그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느껴진다.
S는 고교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하여 ‘카투사’로 차출된 후 야간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기업체 무역부에 들어가서 영어실력을 인정받고 해외지사에서 10여년을 일하다가 본사로 돌아왔다. 부장과 이사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얼마 후 당뇨병이 생겼다고 하더니 결국은 먼저 갔다.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술자리에서 K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30, 40때 처자식 굶기지 않으려고 야근과 특근, 숙직을 맡아 놓고 했는데 직장 높은 분들은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좋은 점수를 주어 동료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해서 국장이 됐어. 세월이 흐르면서 밑에서는 계속 올라오고 내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고 초조하더군. 그럴수록 열심히 더 일을 했지. 삼남매를 대학 졸업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까 나의 책임을 끝냈다는 생각이 들더군. 미련 없이 사표를 냈지. 월세에서 전세로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열 번 넘게 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서 오기까지 집사람이 고생 많이 했지.”
K는 신문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몇 년 전 퇴직해서 지금은 자신의 표현대로 ‘왕백수’다. 어디 K뿐인가. 한국에서 아버지 노릇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힘든 일 있어도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는 것이 가장이 아닌가. 학비와 생활비가 장난이 아니고 결혼비용은 딸자식하나 결혼시키면 기둥뿌리가 빠진다고 하는데...
K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것을 우리 친구들은 잘 알고 있다. 책임을 완수했으니 이제는 여행도 하며 지내라는 나의 말에 내년에는 미국에 가서 너와 며칠 지내고 올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 꼭 와라. 전화를 끊고 K가 한말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인생이 너무 허무해” 이제는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나보다.
이항진 /노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