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2월을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그러나 어디 시인뿐이랴.
몹시 부산스런 오늘 아침, 사실은 늘 그렇지만 단 일초도 낭비할 수없는 바쁜 아침 속에서 머리 속으로는 재빠르게 하루의 일과를 다시 정리하며 책상위에 놓여있는 작은 달력을 바라보았을 때, 새로 추가된 과외 활동의 첫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하면서 아침도 거른 채 차를 몰며 학교로 달려가는 다 큰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부엌 한 쪽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달력에 눈길이 갔을 때, 출근길의 허둥대는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아이들 모두를 배웅하고 들어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헤아리다 무심코 마주친 달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 오늘 오후에 있을 새로 만난 귀여운 그녀와의 첫 데이트를 기다리며 열두 번도 더 들여다보는 시계가 너무나 느려 고장 난 것은 아닌지 만지고 흔들어 보다가 눈에 뜨인 저 달력, 싱긋 웃으며 그 앞으로 다가가 그녀와의 첫 만남을 표시하기위해 만년필을 꺼내들고 사랑의 말을 적으려고 했을 때, 그도 아니면 하루의 어느 때, 어느 순간, 오늘의 요일 혹은 오늘이 며칠인가가 궁금하여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력 앞으로 다가설 때, 우리는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 아니, 벌써 2월이야?”
‘벌써’라는 말 속에는 우리들이 새해, 1월을 그 만큼 바쁘게 정신없이 보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바쁘게 1월을 보냈다는 것은 생활인으로서 자신이 세워놓은 한 해에 대한 계획이 확실하게 진행 중인 것이며 그만큼 한 해에 대한 기대와 성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벌써’라는 말속에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경계와 긴장도 포함되어 있다. 만일 그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바쁘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말 그대로 그냥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는 안될 것이다.
‘벌써’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긴장한다. 그리고 우리를 앞지르기 시작하는 시간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하여 우리는 ‘벌써’라는 놀람 섞인 탄성과 함께 달력을 드려다 보며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추스리며 올 한 해의 계획과 꼭 이루고자하는 결심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경계하며 바짝 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 2월은 얼마나 짧은가를. 아니 벌써?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2월은 가버릴 것이다. 시인이 ‘벌써’라는 말로 2월을 노래하기도 전에 2월은 가버릴 것이다. 항상 비어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을 바라보기도 전에 2월은 가버릴 것이다.
시인이 ‘벌써’라는 말속에서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을 보듯이 생활인은 ‘벌써’라는 말속에서 제 자신을, 제 생활을, 제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돌아보아, 알아채버리기도 전에 ‘벌써’ 지나가버린 1월을 다시 돌아보며 ‘벌써’ 맞이한 2월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라 것이다.
‘벌써’라는 말이 2월에 어울리는 것은 2월이 새 해 1월의 다음 달로 1월의 의미를 연장 시켜주고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이다.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 2월을 맞이하면서 2월 앞에서 커다랗게 한 번 2월을 불러보자. 짧아서 더 소중한 2월을 불러보자. 그리고 우리 바쁜 일상 속에서 2월이 우리에게 주는 그 의미를 새겨보자.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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