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1950년대 6.25 당시 대구로 피난을 갔던 청년 권길상 선생님은 ‘소년세계’라는잡지에 실린 어효선선생의 동시 ‘꽃밭에서’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선생님은 아름다운 글에 이끌려 앉은 자리에서 이 같은 명곡을 만드셨다. 동요 하면 생각나는 굵직 굵직한 노래가 거의 권길상 선생님의 작품이다.
이곳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것중 하나는 학교에서 노래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음악 교과서에 실린 그 어여쁜 노래를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까딱 거리며 부르곤 했었다. 그렇게 배운 옥 같은 노래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흥얼 거리곤 한다. 가물 가물 희미해져 가는 기억력도 무색하게 어릴적 배운 노래 가사는 정확하게 떠 오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속해 있는 단체 중 ‘미주 동요 사랑회’라는 모임이 있다. ‘꽃밭에서’, ‘과꽃’,’어린이 왈츠’등을 작곡하신 권선생님을 모시고 아직은 동심의 마음으로 미주 한인 2세들에게 동요를 보급코저 애쓰는 몇몇 뜻 맞는 선생님들의 모임이다.
며칠전 그 모임의 후원과 서울 YMCA, 한국일보 주최로 ‘미주 동포 가족을 위한 동요 잔치’가 있었다. 그 음악회에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찬조 출연을 했었다. 연습하는 과정에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무슨 노래를 부를지, 누가 화음을 넣을지 궁리를 하면서 엄마가 소싯적에는 노래 꽤나 불렀다고 자랑을 하는데 녀석들이 믿어 주질 않는다.
동화와 동시를 쓴다고 펜을 잡고 있는 내게 요즘 꿈이 하나 생겼다. 오다 가다 어느때고 좋은 시, 좋은 글이 눈에 띄면 곡을 붙이게 된다는 권 선생님 같은 어른을 가까이 뵈면서 선생님께 ‘곡을 붙이고 싶다’는 마음을 일게 하는 멋진 동시 하나 써 보는 꿈이다.
‘동요 부르기’음악회 얘기로 다시 돌아가 곡이 만들어 지고 반세기를 훌쩍 넘어 그것도 태평양을 건너 미주 한인 사회에서 작곡을 하신 권선생님께서 직접 치시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목청 높여 부르는 그 주옥 같은 노래가 내 가슴에 아니, 우리 아이들의 까실까실한 가슴에 이슬 같은 물기로 영원히 머물기를 기도해 본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 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김광희/ 미주 동요 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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