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남보다 조금 먼저 왔다는 죄로 나중에 이민 온 가족, 형제들에게 어쩔 수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운전을 가르쳤다. 어렸을 때부터 내 무릎에 앉아 운전하는 흉내를 내곤 하던 큰딸이 성장하여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더니 “아빠, 운전을 배우고 싶어요”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하나 하고 울상이 되어 가르치는데 딸이 운전을 배우는 속도가 어느 누구보다 빨랐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다음해에 캐나다에 가까운 주립대학에 입학하여 집에 가끔씩 오가던 딸이 어느 날 아양을 떨며 캠퍼스가 커서 걸어 다니기에 힘들고 특히 겨울에는 몹시 추워서 차가 필요하다고 졸라대기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중고차를 사주며 ‘항상 조심, 또 조심’ 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 방학이 되어 집에 와 있던 중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사고가 났다. 당황한 나머지 울면서 집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하니 엄마 왈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하며 역정을 내니 딸아이는 업친데 덥친 격으로 더 울상이 되어 다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인명피해는 없고 가벼운 충돌 사고였다. “사람만 다치지 않았으면 큰 사고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상대방 인적사항만 적어와라. 아빠가 처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 잘 타이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오며 “아빠가 최고야” 하며 안기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선심을 쓴 것도 없는데 아마도 딸이 감동을 받았나 보다. 그리고 엄마는 한동안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딸의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남자친구를 가끔 데려 오다 결국은 그 남자친구하고 결혼까지 하고 지금은 학교 선생이 되었다. 사위는 볼 때마다 내가 젊었을 때 모습을 연상케 하여 딸한테 “네 남편이 나 하고 비슷한 점이 많아” 하니까 딸 왈 “아빠를 좋아하는 딸은 아빠를 닮은 배우자를 찾게 돼요” 라고 흐뭇하게 해 준다. 요즘은 그 딸이 “아빠는 운전 중에 너무 산만하고 또 무슨 말이 그리 많아요. 운전에만 신경을 써요” 라고 오히려 훈시한다.
백덕영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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