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 때 일이다.
설날에 때맞춰 몸이 아픈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집에 모여 떡국 먹고 수다 떨고 세배도 받으면서 맛보려 했던 명절 기분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며칠 전부터 몸이 시원치 않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도 설마 하며 설 연휴동안의 파티 일정을 빡빡하게 짜고 신나게 장까지 봐서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일 날 몸져눕고 만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파티를 취소하고 떡국은커녕 약에 취해 비몽사몽 텔리비전 채널을 돌리며 설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연휴까지 겹친 설인지라 좀 더 푸짐하게 놀아볼 계획이었는데…
다음날 역시 모든 계획을 포기한 채 싸고 누워 있는데 아이들한테서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것도 친구까지 끌고 말이다. 사실 아이들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 누구도 반갑지 않은 상태라서 다음 주말에 보자는 데도 굳이 떡만두국을 사들고 나타났다. 입맛이 없는 와중에도 남이 차려준 떡국상이라는 사실만으로 흐뭇해져서 다행히 몇 숟가락 뜰 수 있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신통해서인지 조금은 기운이 나는 듯 했다.
아이들은 소파에 누워 있는 엄마 옆에서 자기들끼리 어릴 적 친구들이랑 그 가족들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유학생 시절 함께 모여 명절을 새며 다들 가족처럼 지내던 그때 생각이 난 듯했다. 이야기 중에 아들이 갑자기 컴퓨터를 들이밀면서 “엄마, 이 사진 누군지 알겠어?” 하며 알듯 말듯 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글쎄… 어머 얘 정식이 아니니?”
초등학교 때 헤어진 아들 친구인데 벌써 대학생이 되어서 사진 속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감탄사가 내 입에서 절로 새어 나왔다. 새로운 정보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하는 일의 일부이고 이런 정보가 인터넷에 있다는 것 또한 모르는 바도 아닌데 막상 만난 지 10년도 지난 얼굴들을 손가락 조금 움직여서 컴퓨터 화면 위에 뜨게 하다니 인터넷이 신통방통하기만 했다.
“얘들아, 양호랑 민수랑 애나, 지나, 다들 좀 찾아보자”
어느새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앉아 아이들은 미국 사이트에, 나는 한국 사이트에 들어가 찾기 시작했다. 사진을 찾아낼 때마다 그 옛날 별의별 에피소드를 다 기억해 내면서 한참을 깔깔댈 수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첨단기술이 하마터면 김빠지게 보냈을 우리 집 설날 연휴를 단번에 즐겁게 만들어준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민망한 일이 생겼다. 내가 즐겨보는 한국 뉴스 사이트가 열려 있어 평소 신문에 관심이 많은 아들 녀석이 궁금해서 들여다본 모양이다. 며느리들에겐 명절이 노동절이라는 내용 같은데 “명절이 노동절? 이게 무슨 말이야?” 하며 화면을 내리려고 마우스 버튼을 누른다는 게 다른 링크가 클릭이 된 것 같았다.
뭘 어찌했는지 갑자기 가족이 함께 보기는 좀 불편한 사진이 확 떴다. “와!” 하면서도 우량 일간지 사이트에서 불량 사이트로 이토록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아이들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인터넷 덕에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일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기본, 장도 보고 샤핑도 하고 친구들이랑 채팅도 하고 게임도 하고 음악, 드라마, 영화도 해결이 되고. 그뿐인가. 남의 눈을 피해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성인 오락물들이 우리들 손가락 끝에 있는 것이다.
항상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쉽게 퍼지고 자칫 잘못하면 파괴적이 되기도 한다. 간단하게 우리 집 설날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 인터넷의 그 대단한 능력이 잘못 이용되지 않도록 잘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 날이었다. 기억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 행복했던 이번 설날처럼 앞으로도 인터넷이 늘 즐거움과 연관되어 기억될 수 있으면 한다.
<김선윤> USC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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