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 때 한국을 다녀왔다. 서른여섯까지 미혼이어서 집안 어른의 걱정거리였던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 아쉽게도 도착 이틀 전에 있었다. 가깝게 지내던 터라 참석 못한 안타까움에 나름대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선물을 준비해 갔다.
도착 후 가방을 풀면서 선물이 어떠냐고 여쭈니 어머님이 한심한 얼굴로 바라보셨다. 돈으로 주면 될 일을 취향에 맞는지도 모르면서 먼 여행에 들고 다녔냐 하시는 것이었다.
지난해 이곳 한인 친지 아들의 결혼 청첩장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결혼식장이 10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어서 참석은 못해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신부는커녕 신랑도 본 적이 없으니 취향을 전혀 아는 바가 없어 한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수표를 보내주면 되지 선물이 웬 말이냐 했다. 신랑신부 또래의 친구면 모를까 한인들간의 결혼선물은 으레 현금이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한국에서 살던 때의 결혼식이 생각났다. 식장 입구 왼쪽, 오른쪽의 신랑, 신부측 테이블에서 현금 든 봉투를 받고 돈을 세어보고 적은 다음 식장으로 안내하던 풍경이다.
친구의 말대로 수표를 보내려니 얼마를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궁리 끝에 그에게 다시 물으니, 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보통 100달러를 낸다며 그럴 듯한 설명을 덧붙였다. 50달러는 선물비이고 나머지 50달러는 피로연에서의 우리 자신의 식사비라는 것이었다. 식사가 보통 ‘두당’ 20~25달러 정도며 대개는 부부가 참석하니까 2인분을 계산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에겐 나처럼 미국인과의 결혼으로 한국문화를 잊어가는 동생이 있었다. 마침 그 동생도 초대장을 받고 못가는 터라 우린 각자 식사비를 뺀 50달러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 동생이 전화를 했다. 언니가 우리 얘기를 듣고는 답답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계산으로 100달러라고는 했지만 피로연에 못 간다고 50달러를 빼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치사하게 보이지 말고 체면을 지키려면 100달러를 내라는 것이었다. 결국 우린 식사비가 아닌 체면유지비가 포함된 100달러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전 한인 친지의 딸 결혼식에 갔던 생각이 났다. 나 외에 선물을 들고 온 사람이 거의 없어서 미리 주었나 보다 했었다. 요즘엔 백화점 등에서 신랑, 신부가 등록한 목록을 보고 선물을 사니까 샤핑이 쉽지만, 그때는 목록도 없고 그 딸을 전혀 만난 적도 없어서 고심 끝에 산 선물이었다. 허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상당히 치사하게 여겼을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피로연에 참석했으면서도 식사비가 포함된 만큼의 선물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천차만별의 문화가 어우러진 미국에서 내가 대하는 문화가 ‘미국’을 대표하는 양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중서부 내 주위의 경우라 못 박으며 말하자면, 미국생활 20여년 동안 스스로 미국인과 결혼식을 치렀고 미국인들 결혼식에도 많이 갔지만, 특별한 경우 외에는 현금 선물을 본 적이 없다.
친구 자녀의 결혼식이라도 보통 그 아이와 아는 경우에 초대를 받으니까 선물에 의미를 두게 된다. 그러니 친분 정도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비용의 선물을 한다는 원칙이 있을 수 없다. 식사비나 체면 유지비를 포함한다는 것은 더욱 상상 못할 일이다.
남편과 친구로 만날 때였다. 한국어 책을 부탁하기에 사다 주었더니 책값을 돌돌 말아 테이블 밑으로 건네주는 것이었다. 결혼 후 이유를 물으니, 마음에 둔 사람과 내놓고 돈을 주고받는 일이 쑥스러웠다는 것이다. 그처럼 가까운 사람과의 현금거래에 익숙지 못한 미국인 친구들을 의외로 자주 본다.
실용주의자 미국인들과 유교문화인 한국인들이 각각 불리는 닉네임과 상반되는 생활태도를 보여 놀라는 적이 많은데, 현금과 선물에 대한 개념도 그 중 하나라 하겠다.
<김보경> 북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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