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만나게 되는 분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젊을 적 한국의 인텔리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생계마저 정부의 도움을 청하며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고 한국에서 안정적인 지위와 환경을 버리고 젊지 않은 나이에 도전정신을 가지고 미국땅으로 건너 오신 분들도 있다.
미국에 온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여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기존의 가치관에 고착돼 변화에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이 된다. 어릴 적에 미국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적응하는 것에 크게 무리가 없지만 모든 가치관과 사회적 기준이 한국의 정서 그대로 고정된 분들의 경우에는 미국의 그것에 잘 맞추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계약서나 법 문구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동사가 먼저 나오게 되는 영문에서는 끝까지 읽지 않으면 조건이나 단서를 놓치기가 쉽다. 한국의 공무원 업무 처리 기준을 미국의 기준에 그대로 적용하여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봐 왔다. 대부분의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은 그 충돌을 통해 기존의 가치관이 깨어져 나가면서 융화를 이룰 수 있겠지만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융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만큼 이민 초기부터 겪게 되는 신분 문제, 아파트 임대, 주택 매매 등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LA에서만큼은 이러한 이민초기 정착자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줄 수 있는 서비스 업체들이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이다. 변호사, 회계사, 그 밖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서 대리는 할 수 있겠지만, 일단 행위 주체의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그 사람의 어떤 가치관이 적용되는지가 일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쉽게 생각하고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대가를 치르게 되는 분들을 많이 봐 왔다.
한인 청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또한 빠른 변화에만 길들여져서인지 기본적인 부분들을 지나치고 대충 넘어가려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요즘은 미국이 더 보수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미국사회의 실용성과 근대적 전통은 이곳의 신용카드 발행부터, 이민법, 그리고 모든 분야에 있어서 꽤 까다로워 보이는 절차들이 근 200년의 역사적인 선례들의 나열로서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런 것들에 너무도 쉽게 대응하다 보니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인들만의 특유한 가치관 중에서 미국땅에까지 뿌리 내려 고유한 한국인의 특질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근면함’과 ‘신속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구조에 잘 맞춰 나갈때는 그것이 장점이 되겠지만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무시하면서까지 업주로서의 근면함을 내세운다거나 신중함 없이 대충대충 업무를 처리하면서 신속함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해악이 될 뿐이다.
한국적인 기준에 맞춰서 앞만 보는 갈 것이 아니라 좌우도 철저히 확인하면서 넘어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인생지침이 타국 땅에서는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인데 어쩔 때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말일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재의 문제에 대한 자기변명일 뿐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청년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정체성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발을 딛고 사는 곳은 미국이니까.
김유정 법무법인 비전 LA지사 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