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두 쌍의 중년 한국남자와 젊은 베트남여자의 결혼기념사진이 크게 실렸다. 여아낙태가 많은데다 여성의 교육과 신분이 상승되면서 결혼하기 힘들어진 한국남자들이 중국, 동남아에 신부를 구하러 가는데, 원정결혼 주선여행사가 수천에 달하고 지방정부가 여행비까지 보조해준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남자 2명이 20여명의 여성을 한 자리에서 면접하고 몇 시간 만에 한 사람을 선택하여 이틀 후 결혼, 닷새 후 귀국하는 과정을 보였다. 선택된 신붓감이 싫다고 하면 다음 차례의 신붓감으로 정해지고 간단하지만 처가식구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하루나마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신고까지 마치는 이 결혼은 합법적이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하긴 해도 신붓감들 중엔 대졸도 많다고 한다.
지난겨울 한국에 갔다가 한국 남자와 결혼한 독일친구를 만나고 왔다. 독일 철학박사인 그의 남편이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학계의 부조리에 식상해 강단을 뛰쳐나와 강원도 깊은 산중에 초가를 구입하여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어 강사인 그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안산 집과 강원도 집을 오간다.
농부의 신분이 아니면 산중의 집을 살 수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농사를 짓게 된 그들은 옆 농가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집집마다 며느리들이 베트남, 필리핀 여성들이라 했다. 농가엔 노인들, 50이 다 되어 총각신세를 면한 남자들, 그리고 그들과 결혼한 10~20대 동남아 여성들밖에 없고 젊은 한국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한다.
외국인이어서 그들과 가깝게 지내게 됐다는 이 친구는 그들 중엔 여느 부부들처럼 잉꼬부부도, 매일 싸우는 부부들도 있지만 대개는 시집살이 때문에 힘들어 한다고 했다.
바로 옆집의 베트남여성은 1년 전 40대 노총각한테 시집을 왔는데 자주 찾아와 운다고 했다. 영어가 서툴러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가며 시어머니의 구박을 하소연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볼 땐 문화, 언어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며느리를 무조건 무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구박이 결국 부부싸움을 초래한다고 했다.
안산엔 큰 공장들이 많아 동남아시아, 인도 등에서 온 남녀 노동자들이 많다. 매춘 혹은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러시아인들도 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안산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니 옆에 앉은 중년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한다.
“어느 공장에서 일하니?”“공장에서 일 안 해요.”“그럼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구나.”“아니요.” “그럼 뭘 해?”“독어 가르쳐요.” “독어? 어디서?”“대학에서요.” “그럼, 대학 강사?”“네.”“아이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입을 다물었다 한다. 그 친구는 외국인을 상대로 외모만 보고 무조건 반말을 하다가 쩔쩔 매면서 갑자기 존댓말로 바꾸는 식의 태도들이 역겹다며, 나이트클럽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장 직업인을 대학 직업인과 그토록 다르게 취급하는 일에 무척 화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결혼의 14%가 국제결혼이라 한다. 한국 신생아의 10%가 혼혈이라는 그 친구의 말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숫자다. 이 늘어나는 숫자들에 큰 몫을 하는 원정결혼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더하면 더했지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듯싶다.
한국과 사정이 비슷한 영국 웨일스 지방의 농부 다섯 명이 얼마 전 우유통에 자신의 얼굴사진과 함께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는 선전 스티커를 붙였는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와 데이트 스케줄을 짜느라 행복한 비명 중이란다. 그 농부 중 3명은 남자, 2명은 여자라니 남아선호사상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어서 영국 내 해결이 가능해 보인다.
5000년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한국이 필요에 의해 혼혈하는 긴급한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 시어머니들의 너그러움과 남녀평등이 어느 때보다 더 기대되어진다.
<김보경> 북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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