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세계 동아시아 도서관 사서들 모임이 있어서 발표준비 등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한다. 다행히 이번엔 준비 중에 고무적인 사실을 발견했고, 덕분에 준비과정이 즐겁기조차 하다.
북미 내 동아시아 도서관 사서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 영화 자료를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수집할 계획이라고 대답한 대학 도서관이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지의 응답률이나 다른 한계점들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훨씬 많은 대학이 그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북미 지역에서 한국 영화자료를 가장 활발하게 모으고 있는 나로서는 책임감이 절실히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여러 사서들이 자료 수집의 어려운 점 중 하나로 한국 영화에 대한 정보 결핍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올해 발표를 한국 영화 데이터베이스, 리뷰 사이트들을 소개할 좋은 기회로 삼기로 했다. 샘플로 이용할 영화를 고르던 중 최근 미국에 상륙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괴물’이 생각났다.
‘괴물’이 떠오르며 또 다른 책임감이 머리를 들었다. 외국 사서들이 한국 영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자료 구입에 소극적이듯이 내 가족, 친구, 동료들도 ‘괴물’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거나 부족해서 보러 가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든 것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녀석은 리뷰가 좋은 영화라 보고는 싶지만 여자 친구가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나중에 DVD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눈치였다.
순간 전에 읽었던 씨네21의 기사가 떠올랐다. 한국 영화 6편의 포스터를 예로 들어 개봉국 관객의 성향에 따라 예술영화로, 액션영화로, 멜로영화로, 심지어는 에로영화로 똑같은 영화가 포장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괴물’ 역시 국내에서는 ‘가족 사투극’으로 일본에서는 ‘아빠 영화’로 가족에 포인트를 주었다면 서양 포스터에서는 ‘괴수영화’로 괴물이 부각되었다는 것이었다.
“엄마도 괴물 영화는 좀 그런데 가족들 이야기여서 좋았어. 그리고 DVD로도 봤는데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 맛이 나는 영화야. 다른 나라 친구들한테도 선전 좀 하지?”
한 나라와 그 문화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일에 영화는 대단히 효과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국에 나와 살며 주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인지하고 우리 문화에 관심을 쏟을 때 나의 삶이, 그리고 특히 문화 차이를 잘 알지 못하고 표현이 어려운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여러 차례 경험해 왔다.
큰 아이 유치원 때 일이다. 한국에서 갓 온 한 아이가 교실에서 태권도 실력을 자랑하다 주먹질로 오해받아 야단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선생님을 화나게 했던 것은 얘기하는 동안 아이가 눈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 내가 한국 문화는 어른께 꾸중을 들을 때 고개를 숙이는 게 예의라는 얘기와 이곳과 한국의 남자다움 그리고 몸 부딪힘에 대한 허용 정도가 상당히 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날 호기심 어린 얼굴이 된 선생님과 그 당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했던 ‘친구 고발정신’등 여러 문화 차이에 대해 도움이 되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LA로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LA는 코리안 아메리칸이 존재해서 여러모로 힘이 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괴물’의 경우처럼 문화 홍보대사 역할의 기회가 주어질 때면 우리 모두 힘껏 뛰어 우리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워 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선윤 /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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