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도 하고 공치기도 한다고 떠난 주말여행이었는데 좀 추운 날씨였다.
첫날은 손끝이 시려서 호호 불어가면서 놀았고, 그 다음 날은 거짓말처럼 하늘이 깨끗하고 따스했다. 그러나 셋째 날은 또 달랐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데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짙은 안개에 묻혀 산과 들판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치 스키를 하러 온 사람 같은 옷차림을 하고서, 직경 1.68인치짜리의 조그만 공을 쫓아서 낮은 산등성이를 돌고 있는 내 모습이 가관이었다.
논다는 것이 무엇인데 이런 고생을 돈 쓰고 시간 들여서 하고 있는지 맑은 정신 가진 사람은 이해 못할 일이었다. 만일 직장에서 그런 일을 시켰다면 노사문제로 번질 수도 있음직했다. 스스로 좋아 사서하는 고생은 이성이나 판단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윈스턴 처칠경이 개탄한 적이 있다. 골프란 매우 잘못 디자인된 무기를 갖고 아주 작은 공을 더 작은 구멍에 집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라고. 그리고 그는 골프를 그만두고 큰 공을 큰 막대기로 휘둘러 칠 수 있는 폴로게임으로 바꾸었다.
그 시절에 비해서 처칠경이 말한 그 무기는 많이 개선되어 커다란 머리채와 가벼운 샤프트로 공을 아주 잘 맞출 것처럼 디자인됐다. 그러나 주말 골퍼들의 좌절감은 여전하고 실망은 매번 반복된다. 발달된 기구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주말 골프들의 평균 스코어는 지난 10여년이래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너무 너무들 재미있어 한다.
인간이 고안해 낸 게임 중에서 이렇게 재미있고, 동시에 사람을 애타게 하는 놀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란다. 같은 사람이 같은 코스에서 동일한 기구를 갖고 몇 년을 쳐도 여전히 꼭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가 하면, 어제와 오늘의 기량에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운동하기 위해서, 또 어떤 이는 릴랙스 하기 위해서 골프를 한다고 말한다. 공 한번 치고 조금 걷고, 어디로 날아갔는지 분명히 보았는데 그 자리에 가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공을 찾아 헤매는 것을 운동이라 하겠는가.
마치 나를 애 먹이자고 전략적으로 파 놓은 것 같은 벙커에 빠진 공을 꺼내겠다고 공 대신 모래를 몇 번씩이나 찍어 대면서 어찌 릴랙스 할 수 있겠는가. 스트레스 해소는 고사하고 가장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험을 하는 곳이 골프장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최악의 골프 라운딩이 직장에서 보낸 최선의 시간들보다 즐거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골프 게임의 마술적인 힘, 신비성이라고 할 수 밖에는 다른 대답이 없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골프를 풍자하여 “멋있는 산책이 망쳐진 것”이라고 불렀다. 잘 가꾸어진 잔디 밭, 우람하게 자란 나무들, 주위로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연못과 작은 호수들, 푸른 하늘,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 그런 풍경 속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산책하는 것은 정말 멋있고 환상적이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그림 속의 친구들 손에다 골프클럽을 쥐어 줘 보라. 과연 마크 트웨인이 말한 것처럼 이 아름다운 산책은 망가지고 말 것인가. 정성들여서 친 공은 나무 트렁크를 맞추고, 힘 들여서 친 공은 물에 빠지고, 꽃밭에 들어간 공의 행방이 묘연하면, 이 산책은 확실히 망쳐진 것일까.
하루같이 그 인구가 늘어가고 있는 주말 전사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은 말할 것이다. “그저 매일이 오늘만 같아라. 그러면 행복 하리라.” 그들은 마크 트웨인이 골프는 쳐보지도 않고 풍자만 했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골프 안치는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는 연습은 아예 안하고, 못하고, 필드에서 헤매는 염치없고 면목 없어 하는 ‘이따금씩’ 골퍼이다. 그래서 누가 나를 함께 놀자고 불러주기만 하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나는 사람 기죽게 만드는 이 게임에 관한 한 한없이 겸손하다. 골프가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미덕이라고 할까.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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