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의 사망자를 낸 버지니아텍 참극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학교 내 총격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의 범인이 한인 학생이라는 점에서 미주 한인들에게는 더욱 큰 충격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느슨한 총기규제와 인종적 갈등 같은 미국사회의 구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따라 미국인의 34% 가량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총기의 규제는 이런 사건을 방지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의 한 언론 만평은 “한국은 서른 세번째 희생자 ‘하필이면 한국 교포학생이…’”이라면서 사건의 본질보다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 다른 언론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한방에 33명… 이로써 우리의 총기기술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이라면서 연설하는 모습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가 범인이 한국계로 드러나면서 물의를 빚자 총격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뉴스에 경악하는 시민의 모습으로 만평을 바꿨다고 한다.
범인이 한국인인가 아닌가에 따라 많은 인명이 살상당한 비극적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달라진다는 것은 편협한 국수적 민족주의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한국 정부가 공식 사과에 가까운 애도 표명을 하였다는 것도 문화적 차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일면이 있었다.
이번 사건의 주된 원인은 총기규제, 인종차별, 혹은 부모의 잘못된 자녀교육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적응에 실패한 학생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점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다. 물론 그가 이민 온 1.5세대이었기에 이런 문제가 가중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주위에서 사전에 잘 대처하였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조승희씨는 2년 전부터 교수들과 주위 학생들에 의해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까지는 그냥 말 잘 듣고 공부만 하던 착한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 부모를 떠나 살면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 한인들은 이런 증세를 가볍게 다루거나, 성격 탓으로 돌리고 혹은 창피한 일로 여겨서 대학에서 제공하는 전문적 카운슬링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소홀하다.
책임 소재와 관련하여 도의적 책임을 중시하는 한국적 사고방식과 실체적 책임을 따지는 미국식 사고방식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인사회에서 반한 감정을 우려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영사관 혹은 한인회 등의 차원에서 무슨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주위에 조승희씨처럼 정체성의 혼란이나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는 자녀나 2세들이 없는지 살펴보고 이들을 돌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학생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혹은 여름방학에 미국에 어학연수 가려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너무 지나친 기우인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할 때 하는 말처럼 사건이 주는 교훈은 기억하되 과거에 억매이지 말고 ‘Move on’(앞으로 나가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임진혁 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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