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에 매일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드디어 30년 묵은 소나무 장작을 모두 태웠다. 올해에는 기어이 끝장을 보겠다고 작심하고 저녁마다 열심히 굴뚝에 연기를 올렸다. 마지막 날, 마지막 소나무 토막을 난로에 넣을 때는 일말의 감회가 없지 않았다. 이 소나무 장작은 우리 가족의 30년 역사와 함께 살아온 발자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30년 빨리도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동시에 했는지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아득히 치솟아 오른 소나무가 19그루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늘은 소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사각형 모양을 하고, 뒤뜰과 경사진 언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 사각형 하늘 밖으로 다른 하늘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 언덕에는 달콤한 향기를 피우는 노란 꽃이 잔뜩 달린 하니삭클이 넝쿨 지어 있었다. 나비와 꿀벌들이 하니삭클 위로 날아다니고 그것들 위로 햇볕이 빛나고 있었다.
평지에서 살던 우리에게는 각별한 정취를 풍겨주는, 약간은 전원적이고, 낭만적이기도 한 계곡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런 풍경을 즐길 줄은 알았지만, 우리는 계곡생활에 무식한 데가 많았다. 향기로운 하니삭클 넝쿨 사이에 독이 오른 옻나무들이 살고 있는 줄도 몰랐고, 우람하게 솟아있는 소나무들이 그렇게 말썽을 피우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사 온 뒤 얼마 되지 않은 첫 봄에 폭풍호우로 언덕이 무너져 뒤뜰로 내려와 앉았다. 언덕을 덮고 있던 넝쿨과 유도화 나무들, 그리고 소나무들. 그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언덕이 붕괴한 것이다. 10년 동안 가물었던 이 도시에 엄청난 물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 복구공사에 든 비용이 그 후 10년에 걸쳐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매년 소나무를 한 두 그루씩 베어내었다. 무성한 솔잎 때문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았고 가지를 쳐주는 일이 너무 비싸게 먹혔다. 원체 큰 소나무라 하나를 처리하는데 여러 일꾼들이 며칠씩 걸려 땀을 흘렸다. 웬만한 크기의 가지는 실어나갔지만 큰 덩치는 자르고 쪼개서 담장을 따라 쌓아 놓을 수밖에 처치할 길이 없었다.
비탈진 언덕에 서 있는 소나무는 베어내기도 힘들 뿐 아니라, 독을 잔뜩 달고 있는 옻나무들 때문에 옻을 타지 않는 일꾼 구하는 일이 또한 힘들었다. 우리 부부도 옻을 타서 병원 출입을 많이 했었다. 한 세기를 태워도 남을 만큼 많은 장작을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우리는 정말 파이어우드 부자가 된 것이었다.
겨울이 없는 이 지역에서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우리는 어김없이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이제, 드디어, 다 태웠다.
벽난로 앞에서 군밤도 굽고, 책도 읽고, 떠들고 싸우기도 하던 아이들은 그 많은 장작이 아직도 많이 남았을 때 차례로 집을 떠났다. 이제는 소나무가 한 그루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적막한 집에 우리 두 사람뿐이다. ‘빈 둥지’의 평화와 고요를 즐긴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책과 음악 테입들, 스포츠 용품들은 아직도 방마다 정돈되어 있는 그대로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방주인들은 언제나 똑같은 말을 한다. 다음에, 이 다음에, 꼭 정리하겠다고, 약속한다.
우리 집 뒤뜰에는 사슴들이 가끔 내려온다. 어미 사슴과 어린 사슴 세 마리의 가족이다. 하니삭클 대신에 지금은 로즈메리로 덮인 언덕에, 저들끼리 지나다니는 길까지 만들어놓고 제집처럼 들락거린다. 뒤뜰에서 서성대거나 낮잠을 즐기는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만, 꽃이고 채소고 모두 먹어치우는 데는 질색이다. 동물 제거 당국에 데려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멀리 있는 아이들의 반대 때문이다. 데려가면 죽일 테니까, 제발 그냥 두라고 아우성이다.
산 밑 계곡의 생활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사를 할 때, 장작을 치워야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사슴 가족은, 글쎄, 아마도 우리를 따라 평지로 내려가지는 않겠지.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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