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민목사(아펜젤러기념 내리연합감리교회)
오랜 만에 집안 정리를 하다 보니 왠 짐이 그렇게 많은지 비명이 터질 지경입니다. 보지도 않는 책, 입지도 않는 옷, 쓰지도 않는 그릇, 그리고 일 년, 아니 몇 년에 한번 쓸까 말까한 온갖 살림살이가 즐비합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쓸데없고…허구한 날 이맛살을 찌푸리고 둘러보지만, 이 많은 짐을 왜 끌어안고 낑낑거리나,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짊어지고 사는 또 다른 짐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주어진 온갖 책임과 의무입니다. 우리는 모두 크건 작건 간에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가정을 이룬 부모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지고 가야 할 짐 중에 재정적인 짐이 가장 무거운 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이민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 미국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 자리를 잡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문제 역시 우리 부모가 지어야 할 또 다른 무거운 짐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교육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끊임없이 간섭을 계속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건포도(raisin)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전혀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싫어하게 된 이유가 부모인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먹지 않는다고 무조건 야단부터 치
고 강제로 먹이려고 한 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크도록 건포도를 싫어하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른들의 뜻이 선해도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교육이 훨씬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벌어진 그 다음 날에 우리 교회의 한 청년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민자의 가정에서 성장한 한인 1.5세로서 그리고 청소년들의 신앙지도를 맡고 있는 교사로서 조승희군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아픔임과 동시에 엄청난 압력(pressure)과 기대(expectation)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 한인 가정의 자녀들을 걱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이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님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너희(자녀)들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는 길은 자녀들의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하며 성공을 강요당합니다. 고맙게도 많은 자녀들이 학문, 예술, 경제, 의술, 법률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난 이 모든 것을 너를 위해서 했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느냐!”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잘하라”는 좋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허나 많은 경우 그들에게 엄청난 심적 부담감이라는 짐을 지게 합니다. 이런 경우 자녀들이 이해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성공한 자녀는 사랑하지만 실패하거나 뒤처지는 자녀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정신적, 영적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모님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고 때로는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를 이해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그들의 관점으로 자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모두가 지고가야 하는 짐이 훨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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