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이곳은 여름이 온 것처럼 더웠다가 오늘은 바람이 싸늘하고 흐린 날이다. 너에게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구나.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이니 아마 육칠 년은 족히 되는 듯하다. 그때 너는 두 살쯤 된 사내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너를 닮은 듯도 하고 너의 남편을 닮은 듯도 한 그 아이가 이제는 벌써 학교에 다니고 있겠구나.
미국으로 , 베이징으로 다니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온 너희 가정이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무척 반가웠다. 한번은 내가 자주 들르는 사진관에서 너희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너와 시댁 부모님들과 시형제들과 너의 남편과 아이가 모두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 입고 나를 향해 웃고 있더구나. 몹시 익숙한 너의 얼굴, 동그맣고 작은 이마,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너는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마치 네가 모순되는 문맥 속에 놓인 것처럼 나는 한동안 이 낯선 사진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다. 우리가 함께 달리고 떠들던 고등학교의 운동장이 생각 나니? 그 잔디 위에서 우리는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근황조차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구나.
사람들이 한동안 사랑하던 것들, 한때 목숨을 걸면서 소진하던 그 뜨거움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면서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지상의 것들을 가끔씩 추억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한없이 지워지는 얼굴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 아침에 내가 너를 생각하듯이 말이다.
’외로움이 감옥이라면 그리움은 항해’라는 말이 있다. 이름 없는 모든 것들과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멀리 떠나간다. 그 바람결에 너의 안부도 물으면서, 나를 들뜨게 하는 그 신열에 어쩔 수 없이 시달리면서 간다. 내가 이름 모를 그리움의 이름을 불러 주고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무사하거라, 부디 살아 있거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