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봄 LA로 이민 왔을 때 남편 친구 집 앞의 자카란다 꽃을 보니 흡사 환상의 세계에 발을 디딘 듯했다. 조용한 주택가에 줄지어 늘어선 보랏빛 자카란다의 아름다움은 신비로웠다. 아스라한 슬픔을 간직한 듯 뚝뚝 떨어지는 모습조차 황홀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나무여서 자카란다는 여기가 낯선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듯 처연한 모습으로 꽃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거기에 까마귀의 처량한 울음소리는 낯선 땅에 발디뎌놓은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꼭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불안이었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놓인 것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5년을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10년을 한국에서 살다 다시 미국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LA의 대기는 마치 고향에 온 듯 훈풍으로 느껴졌고 뚝뚝 떨어지던 자카란다 꽃은 아름다운 고향의 모습이었다. 내 어린 날 줄지은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눈처럼 내리던 전주 경원동 고향 같았다. 까마귀 울음소리는 이제 그냥 새의 울음소리로 느껴질 뿐이다. LA는 어느덧 친근한 고향이 되어 있었다.
이세진/라 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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