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칼럼에서 다음에는 이민개정법안을 다루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변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며칠 전 전종준 변호사가 그 문제를 잘 다룬 글을 쓰면서 개정법안의 통과가 지연된 것이 법안 자체의 미비점이나 단점을 수정 보완하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잘 되었다고 지적한 것처럼 그 내용이 많이 바뀔 가능성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8일 밤에 있었던 김지하 시인의 시낭송회에서 느낀 감동과 나 자신에 대한 유감 때문이다.
필자가 김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71년 1월경 한·일 신문논조 결정과정에 대한 연구차 전 직장이던 동아일보에 들렀을 때다. 남시욱, 박경석, 장행훈, 권영자 씨 등 동아일보 1기생 동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지하 씨의 ‘오적’ 시 때문에 사상계가 판금된 상태라는 말을 듣게 된 자리에서였다. 그 후 ‘오적’을 읽을 기회가 있었을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었다. 이번 시 낭송에서도 김 시인의 낭송과 데이비드 맥칸 교수의 번역에 있어서 가장 많이 박수를 받은 시가 오적의 ‘도입부’와 ‘포도대장이 동빙고동에 도착하는 부분’이었다. 포도대장 부분은 이와 같다.
남산을 홀랑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이 예로구나…/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은 듣거라/ 너희 한갓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을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렷다./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 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이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에는 벌거벗은 선녀 가득/ 몇 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 백만원짜리 외국개/ 백만원짜리 수석 비석 천만원짜리 석등 석불/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 여대생 식모 두고 경제학 박사 회계 두고/ 임학 박사 원정 두고 경영학 박사 집사 두고/ 가정교사는 철학 박사 비서는 정치학 박사/ …/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추울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발독재 시절에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등의 절대부패에 대한 엄중하면서도 해학적인 고발이다. 그러나 내가 김 시인을 존경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그의 작품세계가 정치적 저항을 초월하여 애린(이웃사랑), 인류애, 환경생태계 보호에까지 이르게 되는 승화였다. 연작시 ‘애린’ 중 ‘똥 퍼’를 인용하면 이와 같다.
똥 퍼/ 장 씨는 여호와의 증인인데/ 똥 퍼/ 장 씨는 별 두 개 짜리/ 똥 퍼/ 징집거부로 삼년 징역에 또 징역 삼년/ 똥 퍼/ 장 씨는 편한 자리 간병부를 지레 마다하고 제일 후진 똥 퍼를 자원한 청년/ 똥 퍼/ 내게 파수대 이바구는 파짜도 아예 없고/ 똥 퍼/ 세상 소식만 소식만 들려주다 빈대먹방 일주일에/ 나와서도 다시 통방, 싱글벙글 매일 통방/ 똥 퍼 똥 퍼 똥 퍼/ 왈 운동한다는 내가 장 씨만 할까/ 똥 퍼/ 장 씨 믿음만 할까/ 똥 퍼/ 장 씨 항상심만 할까/ 똥 퍼/ 장 씨 부드러움만 할까/ 똥 퍼/ 장 씨 우애스러움만 할까/ 똥 퍼/ 못하다면/ 분명 못하다면 한동안은 그저/ 똥 퍼 똥 퍼/ 똥만 퍼
청중 질문 시간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와 같은 김 시인의 혜안과 겸손성이었지만 순발력이나 논리 전개에 있어서 항상 부족한 때문인지 25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장 씨와 나의 종교가 같다는 것을 밝히는 용기가 부족했던 때문인지 엉뚱한 질문을 한 것이 후회스럽다. 김지하 씨야말로 노벨 문학상 감이다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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