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세 살이 지난 딸아이는 요즘 들어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자주 던지곤 한다.
엄마 , 왜 돌멩이랑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사랑은 왜 눈에 안 보여?
이런 물음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살아서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몹시 설레고 두근거린다. 나는 아이에게 대답할 말을 궁리하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 마음 한 귀퉁이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금파리 같은 것들을 상기해 낸다. 그것들은 조금씩 빛을 내면서 잘그랑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이 아닌 사물들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왜 그 목소리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일까?
오늘은 아이가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창문에 거미줄이 있다!
응 ? 유리창이 긁혀서 거미줄처럼 보이는 거야.
그럼 유리창이 다쳤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 어린 시선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숨을 쉬며 살아 있다고 여기는 애니미즘적 사고 방식, 그것은 고대의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면서 보여 준 원시적인 발달 단계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원시성이 차갑고 무표정한 어른들의 세계에 던지는 생명력과 창조력은 놀랄 만한 것이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상은 아이의 시선에 따라 차츰 수런거리고 몸을 들썩이고 손을 내밀며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눈앞의 모든 사물들은 너무나 익숙하여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되었고 우리가 붙인 이름으로 굳어버렸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숨통을 틔워 준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삶으로써 생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참으로 알게 된다.
한번은 아이와 같이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가 풀섶에 맺힌 이슬에 발이 흠뻑 젖은 적이 있다. 아이는 발이 젖는다면서 더 걷고 싶어하지 않았다. 공원에는 커다란 기러기들이 풀을 뜯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걸 봐. 저 새들도 우리처럼 발이 젖었겠다. 그래도 잘들 다니는걸?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것들도 사람들처럼 발을 적시고 손을 맞잡고 말을 건넨다는 인식, 함께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에게서 배웠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알아 보고 보듬어 준다. 나는 지금도 그 가르침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아이와 함께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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