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한나절 땡볕의 시작이다. 이 불볕더위는 올해도 풍미가 뛰어난 쌀농사를 예고해주고, 우리 스시바의 친숙한 몇 어종은 높아진 수온을 피해 좀 더 깊은 바다 속으로 회유를 시작할 테고, 산란기를 맞은 몇 어종은 그늘진 해초류 속으로 자리 이동을 하면서 금어기를 맞기도 할 것이다.
일찍이 일본 내륙 산간 지방에서 쌀에 생선을 보관하면서부터 쌀과 생선은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막부 말기 에도(지금의 동경)의 요헤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초밥에 생선을 얹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시 문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시맨의 첫 입문은 주방일부터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예부터 이를 일컬어 ‘샤리기레산넨’이라고 하는데 ‘밥 짓기 삼년’이란 소리다. 밥은 일어로 고항(飯)이라고 하지만 유독 스시밥은 ‘샤리’라고 부른다. 갓 지어낸 윤기 나는 쌀밥을 ‘다비’가 끝난 고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舍利-샤리)에 비유해 쓰는 스시바의 은어인 것이다. 쌀의 소중함을 느껴 쌀 한 톨이라도 버리는 일 없이 부처님 공양하듯 정성껏 밥을 지으라는 얘기다. 또 초밥을 갤 때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칼로 자르듯(切-기레) 착착 개어나가라는 뜻도 있고 3년(三年-산넨)은 고행의 길을 걸으며 스시의 기초를 다져가야 된다는 참으로 함축성 있는 소리인 것이다.
작금의 우리 스시바는 수산양식와 냉동기술의 발달로 금어기니 산란기니 크게 구애받지 않고 손님의 주문에 응하지만 대신 스시의 신선함과 계절의 맛을 잊음으로써 뭔가 스시의 진실이 감추어진듯 싶어 칼을 잡은 손끝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여기 우리 주변에 늘 싱싱한 생선이 있음을 잊지 말자. Grouper, Tile Fish, Stripped Bass… 때로는 이런 싱싱한 생선을 가지고 공격적인 스시로 손님을 상대하자. 손님들이 언제까지고 스시의 ‘초짜’는 아닌 거다. 단골들은 이런 살아있는 스시바를 좋아하는 것이다.
일본 시즈오까현 쪽의 후지산 밑자락에 백년도 넘게 긴 역사를 가진 ‘국립송어양식장’이 있다. 후지노미야(富土宮)에서 가까운 이누가시라(猪頭)라는 인적 드문 마을이다. 혹 기회가 있어 방문 목적과 시간을 약속하고 예의 있고 부산스럽지 않게 찾아가면 비록 빈객이라도 정성과 예우로 맞아줄 것이다. 더욱이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을 위해 차려 내놓는 검소한 ‘송어상’에서 옛 무사풍의 주인된 자의 의연한 자세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년 된 수목의 그늘 아래 후지산을 배경으로 앉아 태고적부터 봇물 터지듯 힘차게 뿜어내는 ‘용천수’의 맑은 소리를 들으며, 그 물길을 따라 맴도는 시원타 못해 서늘한 공기를 온몸으로 적시다 보면 ‘천태산’에 들어온 수도승마냥 ‘산’과 ‘물’에 취해 그저 마음이 숙연해질 것이다. 어느 스시바에 앉아 이런 고혹한 분위기를 느끼겠는가?
또한 오가며 기차간에서 사먹는 오사카 중심의 틀에 넣고 눌러 만든 ‘Box스시’며 대나무잎사귀에 말아놓은 도쿄풍의 스시는 지방별로 특색이 있는 일본스시 문화의 일면을 볼 수 있어 방문객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송어양식은 이런 용천수 수량이 많은 곳에서만 키울 수 있다. 한국에도 꽤 있다. 오대산 밑자락 용천수가 많은 평창의 것이 오래되었고, 그 후 찬물이 많은 곳이면 어느 곳이고 생겼는데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 중 강릉 내리막 쪽으로 한 70여 구비쯤의 산허리에도 있다. ‘원조’를 강조하는 상술은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우기지만 아마도 한국 송어양식의 효시는 무주구천동일 꺼다.
스시바는 늘 활기가 넘쳐 있어야 한다. 손님과의 새로운 화제를 위해서도, 우리 스시바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도 싱싱한 횟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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